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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판 덕분에 화장품 성공 신화 이뤘죠" - 유상옥(상학55) 교우 인터뷰

2015.11.24 Views 10267 경영대학

"한 우물 판 덕분에 화장품 성공 신화 이뤘죠"
경영대학 교우 인터뷰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유상옥(상학55)교우

교수 수업에서 낙제하지 않으려 회계학 책을 스무 번 읽고, ‘한 우물만 파라’는 총장의 말을 새겨들은 착실한 학생이 있었다. ‘한 우물’ 정신과 착실함으로 무장한 그는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 일했고, 이후 몇몇 동료와 함께 창업했다. 그리고 그의 회사는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 코리아나(대표이사=유학수) 회장인 유상옥(상학55) 교우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위해 Space*C를 찾았을 때 그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 담을 만한 옛 사진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Q.대학시절 특별히 남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학교 주변이 잘 정리돼 있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제가 55학번이니까 학교 건물은 본관, 중앙도서관(현 대학원 도서관)하고 서관이 갓 지어져 있었어요. 학생식당이 작게 따로 있는 정도였죠. 그 때는 학교를 버스 타고 다녀야 하는데 길이 어지러웠어요. 비오면 길이 패여서 버스가 털썩털썩 거렸고, 흙길이라 먼지도 날렸습니다. 지금은 지하철도 놓아졌고, 길도 잘 닦여져 있고, 학교건물도 좋더군요. 
당시 학교주변은 그랬고, 좋은 교수들이 계셔서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이 납니다. 유진오 총장이 있을 때 총장이 상과대학 학생 졸업 예정자들과 점심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식당에서 유진오 총장님이 한 우물을 파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사회 나가서 직장을 다니다가 안 맞으면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맨날 평사원밖에 안 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사회에 나가서 직장생활을 오래했죠. 동아제약 입사해서 30년을 다녔으니까요. 또 나오기 전에 동아제약 라미화장품에서 10년 간 사장을 했는데 이후 화장품 회사를 창업해 지금까지 왔으니 확실히 한 우물 판 것이 되겠죠. 

Q.기억에 남는 교수님이 있다면 어떤 분이 있을까요.
제가 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교수님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특히 회계학을 담당하던 김순식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회계학계의 훌륭한 분이셨고, 저서도 있었고, 학생들에게 회계학을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의 가장 큰 특징이 학생들에게 학점을 짜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대충 쓰면 B나 C을 학점으로 주는데 김 교수님은 아예 점수를 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학교를 5학년, 6학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고등고시에 합격한 상태여서 꼭 점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교에서 회계학 책을 한 스무 번 읽었어요. 기억나는 시험 문제 하나가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를 쓰라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공부안한 사람은 절대 못 쓰는 거죠. 공부를 많이 한 덕에 회계사 시험을 한 번 보고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Q.회사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경영대와 인연을 이어가셨습니다.
대학졸업 후 회사일 배우고, CPA 준비를 했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경영대학원 2기였는데 75명이 들어가서 14명만 졸업을 했어요. AMP를 1966년도에 마치고 나니까 당시 경영대 학장이었던 송기철 교수가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학교 와서 강의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렇게 3년 간 서관에서 가장 큰 202 강의실에서 강의를 했어요. 재무론, 경영분석, 부기회계 등을 강의했어요. 나중에는 회사일이 바빠서 더 이상 수업을 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력을 바탕으로 더 후에는 고려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습니다. 그 외에 회사, 관공서 등에서도 특강을 몇 개 했죠.

Q.경영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경영 원칙이라면 화장품 비즈니스만 한다는 것과 기업가 정신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기업가의 역할은 회사를 만들어 성과를 내고 고용효과를 높이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봐요. 전 그 역할을 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0년도에 월간 중앙과 한국전문경영인학회가 뽑은 새천년 이끌 CEO 50명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은 이명박 씨와 같이 한국을 이끌 CEO 14인에 들어갔는데, 이명박 씨가 현대 건설에 있을 때 자주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살려나갈 수 있느냐 토의를 하곤 했죠.

Q.유물 기증과 장학금 기부를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미술품을 그동안 많이 모아왔는데, 혼자서 가지고 있지 말고 다른 사람도 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200점에 기증을 해서 진열장 2개에 있고, 제 모교인 덕수고등학교 백주년 기념관에도 진열장 6개 있습니다. 고양인 청양에 농촌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청양문화원에도 5개 진열장 안에 제 기증품이 전시돼 있어요. 금년 말에 청양군 박물관을 만든다. 거기에 몇 백점 준다고 계약을 해둔 상황입니다. 
장학금 기부도 꾸준히 여러 곳에 해오고 있습니다. 경영대학에 LG-POSCO관 2층에 제 이름을 딴 교실이 있고, 후배들에게 전학기, 후학기 한 명씩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10년간 장학재단 이사장을 하며, 동창들에게 걷고 저도 내고 해서 장학 사업을 했습니다.
버는 돈 가지고 현금만 쌓아놓는 게 아니고 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사정이 어려운 사람에게 학업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Q.후배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
나이를 먹어보면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고려대 나와서 다 됐다는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대학은 공부의 시작이고 사회 나와서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전공공부를 잘 했더라도 말이에요. 공자의 논어 학이편 첫 장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읽혀라’라는 뜻인데 공자는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도 공부를 했지만 지금까지도 공부를 합니다. 사서 본 책이 수 천권인데, 지금은 회사 직원들 공부하라고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학이시습지 시간을 둬서 직원들이 공부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을 하면 시작할 땐 미약 마지막엔 장대하리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코리아나 처음 시작할 때 월급쟁이로만 30년 살고 보니 돈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작은 돈 가지고 시작했지만 화장품 업계에서 2등, 3등까지도 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순위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CEO가 되면 정말 재미있는 일도 많아요. 전 84세가 된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일을 하며, 사회의 문화 향상과 고용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