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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교수,<남자의 자격> 유관희 교수를 만나다

2011.08.29 Views 3848 정혜림

‘어라, 저 분은...’ 
TV에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KBS 2TV의 주말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 스쳐지나간 얼굴의 주인공은 바로 고려대 경영대학의 유관희 교수였다. 2012년 한국경영학회장으로 선출됐을 만큼 학계에서 명망 있는 유 교수가 갑자기 예능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예능프로그램의 합창단원이 되기까지의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지난 8월 11일 유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인생 2막, 자막 한 줄로 시작하다
  
“남격 합창단 1기에서 박칼린 씨가 주는 감동이 좋았어요. 그 때부터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눈여겨봤죠. 남격 합창단원은 어떻게 모집한 걸까, 나도 저런 데에 동참하고 싶은데 방법은 없나 하는 막연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나도 노래에 대한 애착이 많으니까.” 유 교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변한다는 생각에 55세부터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한 편엔 늘 합창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관심이 있으니 남격 합창단을 더 열심히 챙겨봤죠. 그런데 어느 날 자막 한 줄이 지나가더라고요. 196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만 대상으로 청춘 합창단을 모집한다고. 애들하고 집사람하고 다 같이 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죠. 아빠도 저기 한 번 나가볼까? 그랬더니 아이들하며 집사람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줬어요. 나가면 잘 할 것 같다면서.”
  
6월 중순, 해외 출장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있던 유 교수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KBS에서 온 서류 합격 전화였다. 3000명의 지원자 중에서 200명에게만 주어진 오디션 기회였다. 그가 오디션곡으로 선택한 노래는 유심초의 ‘사랑이여’. 가사도 특별히 남세스럽지 않고, 교수님들과 노래방에 가면 자주 불렀기 때문에 자신 있는 곡이었다. “오디션장에 들어가니 남격 출연자 7명이 다 앉아있었어요. 김태원 씨와 박완규 씨가 주 심사위원이었고요. 준비한 노래를 듣고 나서 음역이 무엇이냐고 묻더라고요. 성가대 할 때부터 베이스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다들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 중에 테너는 많았는데 베이스가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고. 음역테스트까지 다 마치고 나갈 때 김태원 씨가 딱 엄지 손가락을 올리길래 ‘아, 뽑혔구나’ 싶었어요.”
  

촬영장에서 만난 사람들
  
최종 합격자는 40명. 여성단원 21명, 남성단원 19명이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청춘 합창단원들에게 미션이 주어졌다. 오는 9월 24일 열릴 KBS 주최 <제1회 전국 아마추어 합창단 경영대회> 본선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전체 지원팀 중 단 12팀만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다. 새로 꾸려진 합창단은 목표를 향해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생각보다 나이들이 많다’는 게 단원들을 본 첫 느낌이었어요. 1960년대 이전 출생자만 모집하는데 내가 1952년생이니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외로 뽑아놓은 사람들 평균 나이가 62.3세였어요. 84세 넘은 할머니도 계셨고요.”
  
촬영장에는 ‘노래하는 교수’보다 더 특이한 사람들이 많다. 한 출연자는 간과 신장을 이식받았다. 합창 연습을 올 때에도 쓸개즙을 받아내기 위한 고무 튜브를 차고 온단다. 조수미와 동기 동창으로 서울대 음대를 다녔던 출연자도 있다. 대학을 중퇴하고 지금은 양봉업을 하고 있어 ‘꿀포츠’라는 별명도 붙었다. 유 교수는 이들 모두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꿀포츠 김성록 씨는 경북 영양에서 촬영장까지 오는데 무려 6시간이나 걸린대요. 이렇게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이 있어 연습을 오후에 시작하는 겁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물 건너 봉고차를 타러 오는 데까지만 4~50분이 걸리고, 또 그 차를 타고 5~6시간을 몰고 옵니다. 그런데 허리 디스크 때문에 차를 타고 오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고 하네요.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향한 열정 하나로 이렇게 한 곳에 모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시선이 가장 큰 도전
  
촬영장에 갈 때마다 유 교수는 늘 마음을 다잡고 간다. “가서 절대 튀지 말자, 사람들이 교수에게 기대하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말자고 스스로를 추스릅니다. 개인적으로 방송 출연에 임하는 마음가짐입니다. 튀는 발언을 하면 카메라에 한 번 더 잡힐지는 몰라도, 그 발언에 대한 파장은 주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조심스러운 이유는 혹 자신의 TV 출연이 고려대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서다. “다른 대학도 아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문대의 경영학과 교수가 TV에 나가서 예능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잖아요. 눈에 띄는 만큼 누군가 악의적으로 말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다행히도 저를 응원해주는 반응이 많아요. 동료 교수님들도 잘한 일이다, 언제 또 나오는지 알려달라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죠. 예능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합창단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합창은 교수도 해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웃음)”
  
‘교수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유 교수가 청춘 합창단에 나온 뒤 제자들에게 받은 문자 내용이다. 유 교수의 인생철학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스트레스 받으며 살기 보다는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합창단에 지원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지면 창피할 수도 있지만 뭐든지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시도는 해봐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기 때문이란다. “TV 출연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이 나도 알았으면 한 번 해볼 걸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더라고요. 운이 좋게도 저에게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기쁩니다. 고려대 구성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진중한 마음으로 이 기회를 열심히 누려보겠습니다.” (취재,글: 윤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