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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월간지 신동아는 최근 발행한 10월호에서 "재벌 2세 요람"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재벌 후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학교는 단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이라고 보도했다.(김윤식)
재벌 2세 교육의 사관학교라는 표현도 썼다. 이처럼 재벌2세들이 몰리는 것은 역사와 전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다 최근 수년간 급성장을 해 더욱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 한 예로 입학생들의 수능 평균성적이 연세대 경영은 서울대 경영보다 높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또 시설이 뛰어나고 교수진의 질과 국제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지적이다.
고대 경영대를 졸업한 재벌 2세의 수는 헤아리기도 어렵다. 65학번 이후부터를 기준으로 재계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벌 2세만 35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 신동아의 분석.
다음은 신동아 기사 원문
[신동아] ‘재벌 2세 요람’, 고려대 경영대 인맥
최근 고려대 경영대학의 성장이 눈부시다. 고려대 경영대는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사회과학분야 단과대 순위 66위에 올라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100대 대학’에 들었다. 또한 입시전문학원인 메가스터디의 분석에 따르면 2007학년도 신입생 합격 커트라인이 비록 오차범위 안이기는 해도 전통의 라이벌 연세대 경영대학은 물론 서울대 경영대학보다 높았다. 몇 년 안에 ‘아시아 3대 경영대학’으로 인정받겠다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의 호언이 허언만은 아닌 것 같다.
과감한 투자에 힘입은 뛰어난 시설, 풍부한 교수진, 독특한 커리큘럼이 성장동력이 됐다. 거기에 더해 한국 경제계를 이끌어가는 고려대 경영대 출신 CEO들의 명성, 그리고 모교에 대한 이들의 아낌없는 지원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는 ‘막걸리대학’이라 불릴 만큼 서민적인 학풍을 지녔다. 그런데 의외로 재벌가 2세 경영인들 중에 고려대, 그중에서도 경영대 출신이 적지 않다. 최근 5년 사이에 최고경영자에 오른 2세 경영인들을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재벌 2세 요람’ ‘재벌 2세 사관학교’라 부를 만하다.
기업을 창업해서 성장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대를 이어 기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고들 한다. 무수히 많은 기업이 생겨났다가 2대를 못 넘기고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창업자들은 2세 경영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보낼 것인지를 깊이 고민한다. 그 가운데 많은 오너가 고려대 경영대를 선택했다.
주요 2세 경영인 35명 졸업
고려대 경영대 출신 2세 경영인 중 맏형을 꼽으라면 1997년부터 (주)삼양인터내셔날을 이끌고 있는 허광수 회장(65학번)을 들 수 있다. 허 회장은 고(故)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3남이다. 허 명예회장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큰형으로, 삼성그룹의 창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허광수 회장 이후 다수의 LG가(家)와 GS가 2, 3세가 고려대 경영대에 진학했다. 특히 허준구 명예회장은 장남 허창수 GS홀딩스 회장(67학번), 차남 허정수 GS네오텍 사장(69학번), 3남 허진수 GS칼텍스 사장(72학번)을 잇달아 입학시켰다. 허창수 회장은 2005년 허씨 일가를 이끌고 LG그룹에서 독립해 GS그룹을 창업했다. 그를 가르친 고려대 경영대 신수식 교수는 “허창수 회장은 사교성이 좋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선후배들을 잘 챙겨 2세 경영인들의 중심이 됐다”고 기억했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 역시 장남 구자열 LS전선 부회장(72학번)과 차남 구자용 E1 사장(73학번)을 이곳에서 공부시켰다. 이 외에도 1967년엔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철회 회장의 장남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이, 1970년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입학했다.
80학번인 이선용 (주)아시안스타 대표이사 역시 어머니가 구인회 창업주의 차녀로 범(汎)구씨가라 할 수 있다. ‘외식업계의 귀재’ ‘패밀리 레스토랑 1세대’로 불리는 그는 1991년 TGI프라이데이스(TGIF)를 국내에 도입, 2002년 롯데에 매각하기까지 10년 이상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을 평정했다.
현대그룹가에도 고려대 경영대 출신이 많다. 우선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72학번)과 차남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74학번)이 있다. 1979년과 1980년엔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KCC 회장과 차남 정몽익 KCC 사장이 연이어 입학했다. ‘포니 정’으로 불리던 정세영 회장의 외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80학번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89학번이고,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3남으로 아나운서 노현정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은 정대선씨도 고려대 경영대를 다니다 지금은 미국 유학 중이다. 정대선씨의 형 정일선 BNG스틸 사장(산업공학과 89학번)은 정의선 사장과 함께 고려대를 다녔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69학번)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71학번),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71학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기업의 규모와 실적이 탄탄해 후배 2세 경영인들이 잘 따르는 선배들이다.
1972년엔 2세 경영인들이 대거 입학해 눈길을 끈다. 구자열 부회장, 정몽국 회장, 허진수 사장과 함께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삼양사 회장, 고 신덕균 신동방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신성수 고려산업 회장이 입학해 고려대 경영대 전성기를 열었다.
75학번인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비록 졸업을 안 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구자열 부회장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함께 학교를 다녀 두 사람은 가까운 편이다. 박유상 갑을상사 부회장도 75학번이다. 한 학번 위 74학번엔 동화홀딩스 승명호 부회장이 있다.
1976년에도 2세 경영인이 여럿 입학했다. 김준형 행남자기 회장의 3남인 김태형 행남통상·카시오 사장, 김현배 전 삼미그룹 회장, 이범 에스콰이아 회장이 그들. 삼천리그룹 공동회장인 이만득 회장(77학번)과 유상덕 회장(79학번)은 동문 선후배로 기업을 함께 이끌고 있다. 서성환 태평양그룹 창업주의 장남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과 범(汎)롯데가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3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79학번 동기다.
1980년대에도 2세들의 입학은 이어졌다. 1980년 정몽규 회장, 정몽익 사장에 이어 1981년엔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이, 1982년엔 오창희 세방여행 사장이, 1983년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가 들어왔다. 그 후에는 1987년 동국제강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 장세희 동국제강 전무, 1988년 구자신 쿠쿠 회장 아들 구본학 쿠쿠전자-쿠쿠홈시스 사장과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입학하며 맥을 이어 나갔다.
이처럼 고려대 경영대 출신의 주요 2세 경영인만 손꼽아도 35명에 달한다.
‘똥폼’ 잡으면 손해 보는 문화
이들 2세 경영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1982년부터 고려대 경영대에 재직 중인 이필상 교수는 “대다수 교수는 재벌 2세가 입학했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출석을 부를 때 ‘몽’자가 있으면 현대가에서 왔나 보다, 허씨 중에 ‘수’자가 있거나 구씨 중에 ‘자’자가 있으면 LG에서 왔나 보다 추측하는 정도”라고 했다.
“교수들도 학생들도 그들을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학교 당국이 그들을 별도 관리하지도 않았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입학한 이상, 어떤 학생이든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게 흔들림 없는 원칙이다. 그래서 가르칠 때 재벌 2세라고 의식한 적이 없다. 게다가 경영대학은 다른 학과에 비해 학생수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다. 내게 배우는 학생이 한 학기에 250명에 이른다.”
장하성 교수는 재벌 2세들이 “대부분 평범하고 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라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특별한 대접을 받겠다’는 태도를 비친 2세는 없었다는 것.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소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면 ‘재벌 2세 티낸다’는 악평이 돌았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고.
“괜히 잘난 척했다가는 손해를 보는 게 고려대의 풍토다. 특별대접을 해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한라그룹 정몽원이 내 동기인데, 그 녀석이 현대가라는 걸 졸업할 때쯤에야 알았다. 그만큼 내색을 안 했다. 동창모임에도 잘 나온다. 고려대 경영대 2세 중엔 ‘똥폼’을 잡는 놈이 없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전 직원을 상대로 술 마시기 내기를 해서 죄다 굴복시킨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게 다 고려대에서 배운 거다(웃음).”
1968년부터 30여 년 동안 경영대 학생들을 가르친 신수식 교수는 재벌 2세들이 학점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전에 안기부장 모씨가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 자기 아들이 9학기가 넘도록 졸업을 못 했으니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갓 부임한 교수에게 안기부장 비서가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그 교수는 안기부가 뭔지도 몰랐다. 내게 ‘그 회사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일개 부장까지 비서실을 두느냐’고 물어 한참 웃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정작 재벌 2세들은 학생이든, 가족이든, 회사든 ‘누구 아들’이라면서 학점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외국인들도 사발식을 할 정도로 고려대 경영대는 전통과 국제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 79학번인 오성호 굿모닝신한증권 관악지점장은 동기인 신동익 부회장, 유상덕 회장, 정몽진 회장이 재벌 2세라는 걸 졸업할 무렵에야 알았다고 한다.
“내가 복학한 뒤에 나보다 먼저 졸업한 신동익이 학교엘 왔는데 ‘브리샤’ 중고차를 끌고 왔다. ‘저놈은 뭔데 벌써부터 차를 끌고 다니나’ 싶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농심가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반이어서 1학년 때부터 아주 친했다. 게다가 내가 3년 동안 농심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학교 다닌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신동익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에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남과 똑같이 말단사원 생활을 했다. 몇 년 후 아버지 부름을 받고 농심그룹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도 처음엔 밀가루 나르는 일과 기름때 없애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려대 경영대 73학번인 이만우 교수는 바로 위의 72학번 선배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한 학년이 500명이나 돼 동기들끼리도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는 학생수가 많지 않아 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이 있었다고 한다.
“구자열 김윤 정몽국 허진수 신성수 등의 선배가 있었는데, 의리가 있어서 동기, 후배들이 다들 좋아했다. 술도 잘 마시는 편이라 후배들에게 막걸리도 많이 사줬다. 80년대 후반에 입학한 2세들이 경영학 공부에 전념하는 스타일이라면 70년대 학번 2세들은 교우관계도 무척 중시했다. ‘경영이란 곧 사람관계’로 인식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다 떨어진 운동화
이만우 교수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사장을 가르쳤다. 다음은 그의 회고.
“정의선은 다양한 과목을 들었는데, 교양보다는 경영학과 인접 과목을 많이 듣는 것 같았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최철원도 기억에 남는 학생이다. 나는 회계학 교수들 중에서 학점 짜기로 유명하다. 수강생 70%에게 F학점을 준 적도 있어 공부 안 하는 학생들은 내 수업을 피했다. 그런데 철원이는 내 수업을 찾아가면서 들었다. 수업시간은 물론 연구실까지 찾아와 질문했다. 성실하게 공부했다. 물론 공부만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사교적인 성격이라 교우관계도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재벌가 2세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 해 스승의 날에 술을 한 병 들고 찾아왔다. 무척 비싼 술이라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 있는 것 들고 왔다’고 했다. ‘이 친구, 집에 가서 엄청 혼나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재벌가란 걸 알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재벌 2세들은 대부분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만우 교수는 “장학금은 아무도 못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가정형편을 고려해 장학금을 주는 게 원칙이다. 설령 전체수석을 했다 해도 집안이 부유한 학생이면 학과장이 부모에게 전화해 ‘장학금이 꼭 필요한 학생을 위해 양보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니 그 친구들은 당연히 장학금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만우 교수는 또 2세들 대부분이 검소하게 학교생활을 했다고 한다.
“83학번 중에 유원건설 최효석 전 회장의 아들 최영진이란 친구가 있었다. 최 회장은 고려대에 강당을 지어주는 등 당시 잘나가는 사업가였는데, 정작 영진군은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2세들은 다 그렇게 검소했다.”
‘제2 창업’에 성공
재계 관계자는 “고려대 경영대 출신 2세들에게선 다른 2세 경영자들과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고 했다. 선대에서 동업을 했을 경우 2세 대에서도 신뢰를 가지고 동업관계를 이어간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GS그룹으로 독립한 허씨가와 LG 구씨가다. 50년 가까이 동업자 관계였던 구씨가와 허씨가는 2005년 ‘한 기업 두 집안’ 관계를 정리하고 계열사를 분리했다. 이때 GS그룹의 총수인 허창수 회장은 “내가 살아 있는 한 GS그룹에서 LG그룹과 중복되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형제간, 부자간에도 갈라서면 원수처럼 싸워대는 현실이 무색하다.
삼천리그룹도 마찬가지다. 삼천리그룹은 1955년 유성연 명예회장과 이장균 명예회장이 동업해 창업했다. 그런데 두 창업주의 아들 이만득, 유상덕 역시 공동회장을 맡으면서 끈끈한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고려대 경영대 출신이다.
고려대 경영대학 교우회장인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61학번)은 “두 살 연상인 이 회장은 유 회장을 항상 ‘내 아우’라고 말한다. 처음엔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일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게 진심이란 걸 느낄 수 있다. 그런 끈끈한 믿음으로 힘을 합쳤기에 삼천리그룹을 오늘날 알찬 중견기업으로 키운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창업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2세가 그걸 제대로 키우는 건 더 힘들다. 재벌 2세들과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모여 만든 ‘브이소사이어티’ 소장을 지낸 이형승 CJ경영연구소장은 “2세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잘 지키고 키워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 또한 웬만큼 노력해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조급하게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하지 않은 사업에 손을 댔다 실패하기도 한다”고 2세들의 고충을 설명했다.
장하성 교수와 김승유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 출신 2세 경영인 중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가업을 선대 때보다 크게 키워낸 대표적인 인물로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를 꼽았다.
“김남구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아 리쿠르팅 때 직접 온다. 지난 번 기업설명회 때도 직접 왔기에 내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김남구 회장은 아버지 잘 만나서 회장 됐지, 자기 능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고려대 경영대를 나왔다. 원래는 별로 똑똑한 사람이 아닌데 이곳에서 많이 배운 덕분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뛰어넘어 종합금융회사라는 새로운 영역을 일궜다. 그는 단순한 재벌 2세가 아니라 제2의 창업을 해낸 훌륭한 2세다.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회사에 가서 일해도 된다’라고.” (장하성 교수)
동문에서 사업 파트너로
고려대 경영대 출신 2세 경영인들은 학연말고도 이런저런 친분으로 얽혀 있다. 여기에 고려대 학풍까지 더해져 끈끈한 인맥을 유지한다. 하지만 자기들만의 노골적인 모임은 되도록 자제한다. 김승유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 출신 2세 경영인들만의 모임은 없다”고 단언했다.
“젊은 경영인들의 친목모임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라이온스클럽에도 다양한 모임이 있다. 하지만 고려대 경영대 출신끼리만 모이는 것은 없다. 우리끼리만 모이는 사모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개월마다 조찬모임 형식으로 열리는 ‘고려 경영 포럼’이란 게 있다. 이것도 2세 경영인뿐 아니라 고려대 경영대 출신 석·박사들까지 두루 참석하는 열린 모임이다.
“내가 회장이 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 경영인 포럼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자칫 ‘이명박 후원회’로 오인받을까봐 일부러 안하고 있다(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고려대 경영대 61학번-편집자). 대선이 끝난 후에나 할 생각이다. 솔직히 그런 모임이 필요하긴 하다. 오너는 외로운 직업이다. 모든 최종 결정을 자신이 내려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고민을 회사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어렵다. 그러면 조직이 흔들린다. 반면 같은 2세 경영인끼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다, 비슷한 고민을 하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쉽다. 때론 도움을 얻을 수도 있고.”(김승유 회장)
동문들은 사업 파트너로 관계가 확대되기도 한다. 2005년 선박엔진용 주조분야 경쟁업체인 LS전선과 삼양중기가 두산엔진과 함께 3각 출자 형태로 선박용 주조 전문업체 ‘캐스코’를 설립해 화제를 모았다. 경쟁업체끼리 손을 잡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72학번 동기인 LS전선 구자열 부회장과 삼양사 김윤 회장의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2000년 공동출자 형식으로 아이투자신탁운용주식회사를 세웠다.
고려대 경영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재벌 2세들이 중고차 사업체 오토큐브, 신용카드조회 단말기회사 씨씨케이벤, 전자상거래 벤처회사 임팩트온라인에 공동출자했다 실패한 사례들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들의 경영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업투자에 관여했던 경제계 인사는 “그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은 당시가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벤처 붐이 무너지면서 가능성 있던 사업들도 함께 무너졌다. 손잡고 등산 갔는데 소낙비가 쏟아지면 온몸이 젖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필상 교수도 “모든 사업이 다 성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실패 사례들은 고려대 경영대 출신들이 그만큼 모험심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고려대 네트워크’
1970~80년대의 고려대 경영학과는 ‘최고 학과’가 아니었다. 서울대는 물론이고, ‘고법연상(高法延商)’이란 말처럼 연세대 경영학과에도 뒤졌고, 고려대 내에서는 법대에 뒤졌다. 그런데 왜 당시 재벌 2세들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선호했을까. 이만우 교수는 고려대의 인지도와 경영학과라는 특성에서 이유를 찾았다.
“현대와 LG(GS 포함)의 사풍이 고려대의 학풍과 많이 닮았다. 그곳 경영 1세대들 중에 고려대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2세들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영향을 받아 고려대를 선호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전에는 재벌 2세들이 고려대 법대를 선호했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부터 경영학을 배우는 게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면서 하나둘씩 경영학과에 들어온 것이다.”
신수식 교수도 “운동선수들도 출신 고교마다 선호하는 대학이 다르다. 그 대학에 고교 선배들이 있어 대학생활을 하는 데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2세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촌 또는 어려서부터 알던 선배가 고려대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고려대를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장하성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란 말이 부상하고 있는데, 자기의 외연과 활동영역을 뜻하는 네트워크의 결속력이 고려대의 경우 워낙 강하다. 그게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되면 문제겠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는 문화라면 좋은 것 아닌가. 고려대의 결속력 강한 네트워크가 자기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고려대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필상 교수는 고려대만의 학풍을 꼽았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은 기업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노력과 의식이 강하다. 흔히 똑똑한 사람일수록 ‘직장이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출세하고 발전하는 데 직장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며 계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출신은 ‘내가 직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기업들이 고려대를 선호한다. 실제로 이곳 출신 직원들이 실적도 좋다. 그런 직원들을 본 오너들이 자식도 저곳에서 공부시키면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기업에서 가장 중요시한 경영능력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단결력과 조직에 대한 헌신이었다. 고려대의 학풍과 딱 맞아떨어졌다.
또한 오너는 온실 속에서 자란 자식의 앞길이 걱정됐을 것이다. 그런데 고려대에 들어오면 누구나 모든 걸 벗어던지고 술을 마신다. 그런 다음에 자신을 추스르면서 내가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어보라는 뜻에서 자식을 보낸 오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로는 고려대 경영대에 입학하는 2세 경영인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사정은 다른 대학 경영대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글로벌시대라 세계적인 흐름을 배우려고 외국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려대와 다른 대학 경영학과들이 세계 조류에 뒤떨어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문제투성이 대입제도가 해외유학을 부추기는 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단결력, 조직에 대한 헌신
장하성 교수는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 재벌가 3세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견기업 오너들은 여전히 자식을 고려대로 보내려고 한다는 것. 현재 재학 중인 대기업, 중견기업 자제도 여럿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MBA까지 마친 재벌가 2, 3세들이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과정에 들어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고려대 네트워크의 힘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고려대를 가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고려대 문화’를 접해보고 싶어하는 재미교포 2세도 많다. 우리가 기업 오너들의 국제화 갈망을 어떻게 충족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해결되어 굳이 외국으로 나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서면 대기업 오너들이 예전처럼 2세를 우리에게 맡길 것이다.”
고려대 경영대는 한때 그 빛이 바랬던 ‘최초’ ‘최고’의 수식을 되찾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 100년사’를 쓴 신수식 교수는 “고려대 경영학과의 역사가 곧 한국 경영학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1905년 보성전문에 이재학과(理財學科)가 생긴 게 우리나라 경영학과의 효시다. 1946년 경상대학 상학과가 생긴 것도 고려대가 최초다. 당시 고려대 상학과 교수들이 쓴 책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됐다. ‘경영학과’란 이름을 맨 처음 사용한 것도 1954년 우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영연구소도 1958년 창립한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소였고, 경영대학원도 1963년 우리가 처음이었다.”
되찾은 ‘최고’ ‘최초’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떨어진 위상을 다시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려대 경영대 건물은 고등학교 교사(校舍)보다 못하다”는 말도 나왔다. 본관은 1972년에 준공된 건물로 당시만 해도 고려대 내에서는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던 신식 건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낡은 것인데, 마치 고려대 경영대의 추락한 위상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필상 교수가 경영대학장에 취임한 것이 그 무렵이다. 이 교수의 말.
“연세대는 1990년대에 김우중 회장이 상경관을 멋지게 지어줬다. 교수의 질과 커리큘럼도 중요하지만 외형도 중요하다 싶어 본관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몽준 회장의 도움으로 현대그룹에서 지원해줘서 2000년 리모델링이 완료됐다. 그러자 ‘이왕 하는 것 별관도 짓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500억원 가까운 돈을 모았다. 260억원을 들여 2003년에 LG-POSCO관을 완공했고, 남은 돈으로 외국인 교수도 영입하고 자체 장학금을 확충하고 경영전문대학원을 개편해 각종 MBA과정을 만드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경영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마련했다.”
이렇게 과감하게 투자한 결과, 2005년 세계경영대학협의회(AACSB)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올 2월에는 유럽경영대학협의회(EQUIS) 인증도 받았다. 두 개의 인증을 모두 받은 곳은 국내에서 고려대 경영대가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40여 개 대학밖에 없다. 2006년과 2007년에는 2년 연속 BK21사업 경영전문 분야 최우수 대학 랭킹1위로 선정됐다. 지난 6월엔 7년 넘게 세계 최고의 MBA스쿨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경영자 프로그램(Executive Program) 협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그램은 고려대와 와튼스쿨이 공동으로 기업 임원급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단기 MBA 과정이다.
장하성 학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고려대 경영대를 아시아 3대 경영대학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바람이 이뤄진다면 고려대 경영대가 ‘재벌 2세의 요람’을 넘어 ‘경영인의 요람’이라는 명성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출신인 이웅렬 대표가 이끌어가고있는 코오롱 그룹 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