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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 시사 월간지 신동아는 최근 배포한 6월호에 "시류따라 요동치는 대입 배치표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게재해 화제를 끌고있다.(김윤식)
신동아는 이 기사에서 2007학년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입학생들의 성적이 연대 경영은 물론 서울대 경영까지 앞섰다는 입시학원 메가스터디의 분석등을 인용 보도하면서 시대에따라 명문이 달라지는 현상을 실제 사례를 통해 소상하게 소개했다.
이 잡지는 특히 한때 연대 경영에도 뒤져 연상고법의 함정에 빠져있었던 고대 경영이 이 시대 최고의 명문으로 급신장한 것은 가장 보범적인 변신에 성공한 사례라고 지적하면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대학 당국의 시대를 앞선 브랜드 전략과 미래지향적 행정 그리고 졸업생들의 헌신적인 후원 등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어윤대 전 총장과 장하성 학장의 리더십을 크게 조명했다
다음은 신동아의 기사 전문.
시류 따라 요동치는 대입 배치표
'고대 경영 〉연대 경영’ ‘연대 법학 〉연대 상경'
● 지방대 수의예과 점수면 서울대 공대 합격
● “고대, 법학·경영대 쌍끌이로 인문계 전체로도 연대 앞서”
● ‘동문의 힘’ 앞세운 고대 경영대의 브랜드 마케팅
● 연대는 인문계 법학과, 자연계 원주 의예과가 ‘넘버2’
● 이대는 영문〈 초등교육, 한양대는 공대〈 수학교육
● ‘汎의대’ 외연 확대… 간호, 생명공학도 ‘거침없이 하이킥’
서울대 물리학과 311점, 서울대 전자공학과·의예과 305점, 서울대 농화학과·고려대 의예과 290점, 서울대 농업공학과 280점, 서울대 수의예과 275점, 아주대 의예과 270점, 원광대 의예과 256점….
1992학년도, 학력고사 340점 만점 시절 대성학원 대입배치표에 나온 합격 가능 점수다.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농대로 내려와서야 다른 대학의 의대나 약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2007학년도의 사정을 보면 대학보다는 전공에 따른 서열이 두드러진다. 학력고사 시절 평균점에서 50점이 넘는 차이로 우위를 점했던 서울대 물리학과보다 원광대 의예과가 같은 급간(표준점수 525점대)에서 좀더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수의예과의 약진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상위권 배치표에서 좀체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충남대 수의예과가 지금은 서울대 공학계열 수준이다. 15년 전에는 60점 이상 차이가 났다. 서울대 내에서도 수의예과는 전자공학과에 비해 30점가량 점수가 낮았지만, 현재는 오히려 수능표준점수 3~5점 차이로 수의예과가 앞서 있다.
이런 경향이 비단 올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크게 보면 2000년대 이후 학번부터 이어져온 현상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입학부터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트렌드가 굳어진 것도 큰 몫을 했다.
물론 2000년대 들어서도 올해처럼 자연계 대입 수험생들에게 학교 ‘간판’의 의미가 없어진 적은 드물었다. 종로학원과 대성학원 자료에 따르면 5년 전인 2003학년도만 해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와 공학계열의 표준점수가 대구가톨릭대, 숙명여대 약대보다 5점가량 높았으나 2007학년도에는 오히려 5점 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의 위치, 명성과 관계없이 의·치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는 최상위권 학생에게 ‘묻지마 지원’ 대상으로 변했다. 입시학원가에서는 ‘서울대반’ ‘연·고대반’ 같은 분류를 버리고 일찌감치 ‘의치한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등)’ ‘교·사대반(교대, 사범대)’ 식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자연계에 비하면 인문계는 아직까지는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대학 간판에 따른 쏠림현상도 여전하다. 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몇몇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그중 한 가지가 고려대와 연세대 인문계열 신입생의 입학성적 변화상이다.
고려대 대표 브랜드 ‘경영대’
오랜 기간 고려대는 법학, 연세대는 상경계열에 우수한 자원이 많이 입학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 두 전공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입학성적으로만 볼 때 연세대 쪽에 무게중심이 기울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0여 년 전인 1976학년도 대학입시 예비고사 점수를 수록한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세대 경제학과는 261.78점, 경영학과는 259.60점으로 고려대 법학과(259.12점)를 근소하게 앞섰으며 고려대 경영학과(255.24)와는 꽤 격차가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연 300명에서 1000명 선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고려대 법학과는 연세대 상경계열을 눈에 띄게 앞서 나갔다. 그러나 연세대 상경계열과 고려대 경영대 간 입학성적 차이는 그다지 좁혀지지 않았다.
고려대 경영대가 객관화된 입학시험성적 기준으로 연세대 경영대를 이긴 것은 2006학년도부터라는 게 입시학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고려대 경영학과 입학생의 수준이 부쩍 높아지긴 했으나, 연세대가 경영·경제·응용통계는 물론 신문방송학과·사회학과 등을 통합해 사회계열로 한꺼번에 뽑는 바람에 1대 1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본격적인 정면승부가 펼쳐진 것은 2003년 연세대가 경영대학을 분리한 데 이어 2005학년도부터 경영대학 지원자를 따로 뽑기 시작하면서부터.
청솔학원평가연구소가 2006학년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정시 합격자 수능시험성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려대 경영(538.9점)이 연세대 경영(537.3점)에 비해 수능표준점수가 1.6점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서울대는 최초 합격자, 고려대와 연세대는 1, 2차 추가 합격자를 포함한 최종합격자를 기준으로 작성됐으며 표본합격자 수는 전체 모집인원의 약 20%였다.
연세대가 인문계 지원자의 경우에도 탐구영역 4과목 성적을 모두 반영하는 바람에 3과목만 반영한 고려대에 비해 ‘전형 자체가 껄끄러워 일시적인 손해를 본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위권 학생들의 지원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을 낳았다. 고려대는 당시 경영대의 약진에 힘입어 인문계 전체에서도 수능 표준점수 535.9점으로 연세대(533.3점)를 미미한 차이로 눌렀다는 게 청솔학원의 분석이다.
동문 명사들의 등록 권유
2007학년도에는 좀더 화끈한 결과가 나왔다. 최근 입시학원 메가스터디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고려대 경영학과는 537.3점으로 연세대 경영(536.5점)은 물론 서울대 경영(537.2점)보다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은 하위 15%에 해당하는 추정 커트라인을 발표했는데 서울대 경영이 535점, 고려대 경영이 532점, 연세대 경영이 530점으로 메가스터디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솔학원에서는 고려대와 연세대 경영학과 평균점을 533.9점 동률로 추정했다.
고려대 입학처에서도 최근 자체적으로 ‘75% 커트라인’으로 불리는 지원 안정점수를 공개했는데, 2007학년도에는 경영학과가 390점으로 법학과의 392점에 이어 인문계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올랐다. 법학과 수능점수는 2006학년도와 같았으나, 경영학과는 382점에서 1년새 8점이나 상승했다. 최근 3년간 평균점수 상승률은 경영대가 고려대 내에서 단연 최고다.
각 학원은 “논술과 내신성적 실질반영률 부담이 덜한 고려대로 수능 고득점자가 대거 몰린 것도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쉬운 수능’ 탓에 상위권 학생 간 변별력이 없어진 것 또한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사이에 상존하던 점수차이를 없앴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내부적으로 국내에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유일한 경쟁상대로 삼자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 5년내 아시아 3대 경영대학으로 등극하는 게 현재의 목표”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연세대 경영’과의 비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올해 고려대 경영학과의 입학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간 데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김승유 전 하나은행장 등 유명인사 동문들이 수능 고득점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등록을 당부한 것이 큰 힘이 됐다는 게 학교측 분석이다. 그 결과 서울대 장학생 입학 예정이던 권모(19)양 등 10여 명의 최상위권 수험생을 고려대 경영학과로 발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려대 경영대 관계자는 “이명박 전 시장에게 ‘대선을 앞두고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안 해주셔도 상관없다’고 했는데도 ‘내가 고려대 덕분에 큰 사람인데 당연히 해야죠’라며 흔쾌히 승낙, 우리가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고려대 경영대측은 어윤대 경영학과 교수가 총장 재직 시절이던 2003년부터 종합전략을 짜고 꾸준히 투자를 늘려온 게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요컨대 ‘글로벌 고대 경영’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을 통해 단과대 브랜드를 세일즈하는 ‘비즈니스’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시 고려대는 로스쿨 제도가 곧 실시될 것으로 보고 서둘러 경영대 발전전략을 짠 것으로 전해진다. 법학과 학부가 없어지고 전문대학원이 생겨나면 학부에서는 자칫 연세대에 맞설 상징적인 전공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것.
반면 연세대는 경제학은 순수 사회과학, 경영학과는 실용학문으로 분리되는 세계적 추세에 편승하는 시점이 다소 늦지 않았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경영대학’이라는 단일 브랜드를 일찌감치 정비하지 못하고 ‘상경대학’ 간판을 너무 오래 달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세대 경영대 관계자는 “든든한 ‘돈줄’이던 대우그룹이 기우는 바람에 1990년대 이후 자금조달에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학과를 학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학부로 만들자는 고려대의 움직임은 ‘펀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윤대 총장 시절 약 4500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도 600억원가량의 전용 예산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고려대 입학생의 수능 평균점수는 최근 수년간 빠르게 상승했다.
투자의 힘
한 경영대 교수는 “신문광고 등 홍보비를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단과대는 국내에서 고려대 경영대가 유일하다. 또 소속 교수가 SCI에 논문을 게재하거나 학문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내면 자체 예산에서 1000만원 가까운 별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다른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단과대학에서 ‘학교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경영대 자금을 전체적으로 쓸 수 있도록 요구하고 나서면서 최근에는 건물 증축 등 외형 늘리기는 자제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대외적인 마케팅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고려대 경영대는 지난해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사회과학분야 단과대 순위에서 66위에 올라 서울대를 제치고 국내 대학 경영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100위권 안에 진입했다. 또 2005년 세계경영대학협의회(AACSB) 인증에 이어 2007년에는 유럽경영대학협의회 인증인 ‘EQUIS’까지 받았다. 두 개의 인증을 모두 받은 학교는 고려대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연세대 경영학과는 상경대학에서 경영대학이 분리된 지 몇 해 되지 않아 아직 인증을 받지 못했다. 특히 AACSB 인증은 미국 대학을 제외한 경영대학 중에는 세계적으로 70여 곳밖에 받은 곳이 없다. 한국에서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경영대가, 일본에서는 게이오대 경영대가 인증을 받았으며 와세다대 상학부는 아직 받지 못했다.
학생 개개인에게 뿌리는 ‘당근’ 전략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경영대생에게 특화된 해외 교환학생 확대전략이 주효했다. 1990년대 중반 학번까지만 해도 고려대생들에게 해외 교환학생은 언감생심이었다. 우선 상당수 미국 대학과 협약을 맺어 교환유학생 선발 경쟁률이 높지 않던 연세대와 달리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기 때문. 그나마 제대로 협약을 맺은 미국 대학은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분교와 아메리카대 2곳에 불과해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외무고시 1차 합격 수준’이 돼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고려대 경영대에서는 희망자라면 거의 제한 없이 해외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으면서 최장 1년까지 수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해외 대학 등록금을 한국에 납부할 수 있어 자비 어학연수 등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저렴한데다 시간낭비도 없다.
2003년 100여 명 수준이던 것이 올해엔 200여 명(예정)으로 규모가 커졌는데, 연세대 경영대의 지난해 교환학생 파견규모가 160여 명임을 감안하면 일단 양적으로는 균형이 맞춰진 셈이다. 교환유학을 외국 대학에서 고려대로 오는 이른바 인바운드(in-bound) 유학생 수는 고려대가 단연 국내 최다인데, 2003년 30여 명에서 2006년 150여 명으로 늘었다. 고려대측은 “구호로만 ‘글로벌 고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교류협정을 맺은 미국 대학의 질적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예일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분교, 버클리 분교, 남가주대,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분교 등 아이비리그 대학과 서부 최고 수준의 공립, 주립대학들이 망라돼 있다.
1970년대생부터 386세대에 이르기까지 현재 30, 40대인 대기업 오너 2, 3세 가운데 고려대 출신이 많아 ‘동문 파워’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 삼양사 회장,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박정원 두산상사 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연세대 법학과의 약진
그런가 하면 연세대 경영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연세대 관계자는 “친환경, 최첨단 디지털 콘셉트를 지닌 경영대 전용 건물이 2009년경 준공되고, 그동안 공을 들여온 AACSB 인증을 올해 차질 없이 받게 된다면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연세대 경영대는 ‘경영대 발전기금’ 배너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비중 있게 달아놓고 동문에게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김영일교육컨설팅의 이치우 상담강사는 “최근 수년간 고려대 경영학과로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몰린 것이 사실”이라며 “이는 내신성적과 논술의 실질 반영률을 낮춰 수능 고득점자들의 ‘편한 지원’을 유인한 데 1차적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또 수시모집 등에서 강남학군이나 특목고생에게 유리한 어학성적 위주의 ‘글로벌 전형’을 대거 도입한 것도 한몫했다”는 것. 하지만 그는 “학부모 중에 ‘그래도 상대는 연대 아니냐’고 하는 분이 아직은 다수이고 입시제도가 해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에 고려대 경영대의 약진이 계속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려대 인문계는 전통의 법대와 신진기예 경영대를 앞세워 나머지 단과대학의 지위도 끌어올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유명 입시학원들이 작성한 올해 대학입시 배치표엔 고려대와 연세대의 기타 인문계 학과들이 동일한 급간에 분포하며, 정원이 많은 법학, 경영학과의 선전에 힘입어 인문계열 전체 평균 성적은 고려대가 오히려 다소 높은 것으로 보는 추세다.
1990년대만 해도 서울대 입시안 발표 후에 비슷한 전형방식을 내놓는 ‘미 투(me too)’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독자 전형을 미리 발표해 다른 학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다. ‘정원의 50%를 수능성적으로만 먼저 뽑겠다’는 취지의 수능우선전형 등이 그런 예다.
연세대에서는 고려대와 달리 법학과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 복수지원이 가능해진 1996학년도부터 법학과 선호현상이 점차 뚜렷해졌고 사법시험의 계속되는 인기도 이런 경향을 부추겼다. 10여 년 전만 해도 영문과, 신문방송학과에 비해 비교적 확연하게 점수차가 벌어지는 학과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입시학원들의 2007학년도 배치표에서는 경영대학과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넘버2’ 전공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전에 경영학과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되던 경제학과, 응용통계학과가 있는 상경계열보다도 위다. 연세대와 고려대 지원자의 절대 다수가 서울대에 복수지원하는데, 이들이 법학, 경영 전공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경향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법시험에서도 연세대는 121명의 합격자를 배출해 합격인원 증가율 1위를 기록했으며, ‘1000명 선발 시대’가 시작된 이래 고려대(143명)에 가장 근소한 차로 접근했다. 1976년 예비고사 결과를 보면 연세대 법학과 평균점은 245.13점으로, 법학 전공만 놓고 보면 고려대 법학과에 15점가량 뒤졌으며, 성균관대, 한양대, 경북대, 부산대 법학과보다 낮았다.
독야청청 ‘汎의대’
자연계에서는 공과대의 하락곡선이 좀체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입시학원들의 2007학년도 배치표를 보면 의대 치의대 한의대 약대에 이어 새로이 ‘범(汎) 의대군’으로 편입된 수의대까지 학교의 네임밸류와 상관없이 상위 3개 급간에 분포한다. 수능시험 성적으로는 대부분 상위 1% 안팎이다. 김영일교육컨설팅사의 최근 5개년간 배치표에 따르면 2003학년도만 해도 서울대 물리학부가 수의예과보다 점수가 조금 높았으나 2007학년도엔 비슷한 점수차이로 위치가 역전됐다.
대성학원이 작성한 연세대 배치표를 보면 1992학년도에는 서울캠퍼스 자연계 중 비교적 하위권이던 식품영양학과와 원주캠퍼스 의예과가 나란한 점수대에 포진했으나 현재는 서울 캠퍼스 의예과, 치의예과 바로 밑에 근소한 차이로 원주 캠퍼스 의예과가 자리잡고 있다.
올해 들어 특기할 만한 변화상으로는 수학교육과와 생명공학 관련 전공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들 수 있다. 생명공학과는 의대 열풍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수학교육과의 인기는 사범대계열의 상위권 지위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전공 모두 10여 년 전만 해도 주요 공과대학보다는 대체로 낮은 점수대에 있었다.
올해 배치표에서 ‘범의대’를 제외하고 주요 대학에서 수능점수가 가장 높은 학과들을 살펴보면 트렌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가톨릭대는 생명과학부, 고려대 한양대 홍익대 이화여대 인하대 경북대 부산대 동국대는 수학교육과로 나타났다. 그 다음에 자주 보이는 학과들도 대부분 과학교육이나 간호학 전공이어서 의대, 사범대의 외연은 더욱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공과계열에서 특성화한 전공분야를 ‘상징’처럼 갖고 있던 대학들도 몇 년새 권좌를 내주는 바람에 무색무취하게 변해버렸다. 한양대와 인하대가 대표적인 예다. 홍익대 역시 2003학년도만 해도 수능 표준점수 기준으로 ‘전통의 1등학과’이던 건축학과가 수학교육과를 12점가량 앞서 있었으나 2007학년도에는 비슷한 점수 차이로 수학교육과가 역전한 상태다.
서울대는 2003학년도에는 전기컴퓨터공학부가 생명공학부를 표준점수로 7점 가량 앞섰으나 2007학년도에는 5점 차이로 순서가 바뀌었다. 전기전자공학 전공은 1990년대 후반까지는 의예과와 ‘넘버1’을 다퉜다.
생명공학부의 대약진은 2009학년도부터 각 대학 의예과가 없어지고 대부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기인했다. 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선수(先修)과목을 가장 많이 취득할 수 있는 곳이 생명공학부이기 때문. 가천의대의 경우 이 학교 의대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면서 의예과생을 뽑지 않자 생명공학과로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대부분 수능성적 상위 5% 이내다.
인문계에서도 교대, 사범대의 순위 상승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서울교대는 1995학년도만 해도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고려대, 연세대 중위권 학과 수준으로 분류된다. 공주대, 한국교원대, 경북대 등 비(非)서울권 대학에서도 영어교육, 국어교육과 등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한강 이남 최고 학부’라는 말을 듣던 전통의 경북대 영어교육과도 1990년대 한때 ‘지방대’ 타이틀 때문에 순위가 처진 적이 있지만, 사범대 바람에 힘입어 다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한 양상이다.
이화여대에서는 서울교대 외에 유일하게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원 임용고사에 지원할 수 있는 초등교육과의 합격선이 영어교육과를 근소한 차로 앞서며 수년째 입학성적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여성 엘리트의 산실이던 이른바 ‘이대 영문과’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편. 현재는 인문과학부로 통합모집을 하는데 초등교육과에 비해 두 급간 아래, 표준점수로는 10여 점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특성화한 전공과목만 전문적으로 내세운 틈새 학과들이 ‘명문대’ 간판을 나꿔채기도 한다. 마치 기업처럼, 내용엔 큰 차이가 없더라도 간판을 바꿔달고 기업 이미지통합작업(CI)을 하면 흥행이 되는 사례도 있다.
브랜드 차별화로 살아남는다
정시에서 30명만 소수정예로 모집하는 인하대 아태물류학부는 2004년 신설된 이래 다양한 마케팅과 학교, 정부 차원의 지원 덕택에 신입생 성적이 이 학교 인문계에서 가장 높다. 수능성적 상위 3~4% 학생이 몰려 고려대 연세대의 하위권 학과, 서강대 성균관대 상위권 학과와 비슷한 수준이다. 4년 장학금에 한진그룹 입사, 해외 연수 기회를 보장한다. 전통의 공과대를 제치고 인하대의 ‘대표학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인천대 동북아통상학부는 동북아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상황에 착안, 기존의 무역학과 틈새를 파고들어 효과를 봤다. 1998년부터 신입생을 뽑았는데 2007학년도에는 수능시험에서 2과목 이상 1등급(상위 4%)을 받아야 지원이 가능했다.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해외 대학 1년 연수도 학비를 지원받아 다녀올 수 있다.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통상의 4개 세부전공이 개설돼 있는데 졸업생은 대부분 대기업 해외영업 파트에 취업한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아주대 인문계열에서 독보적인 e-비즈니스 학부도 수능성적 4~5%대 우수생이 몰린다. 큰 틀에서 보면 경영학과의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지만, 경영학에 정보통신(IT) 분야를 전략적으로 접목해 경영학과에서 2001년 독립했다. 인문계, 자연계 학생 모두 지원할 수 있으며, ‘간판’이 미래 지향적 분위기를 풍기는 덕분인지 해마다 수시모집 때는 경쟁률이 50대 1이 넘는다.
정보통신부에서 IT핵심인력 양성을 위해 세운 정보통신대학(ICU)은 2002년부터 학부 신입생을 받았지만 전공은 IT경영학과와 공학과 두 개뿐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IT경영학과 지원자의 수능 평균성적은 상위 1.5%로, 고려대 연세대 상위권 학과 수준이다. 120명의 입학생이 3학년 3학기제로 수업을 받는다. 학교 내에서 수행하는 연구의 절반 이상이 정통부 산하 연구과제라 자연스럽게 관학·산학협력관계가 이어진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4명으로, 일반 대학 평균 28명의 절반 수준이다.
포항이라는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교 12년 만에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 수준으로 이름을 올려놓은 한동대도 비슷하다. 인문, 자연계 구분 없이 일괄 선발해 교양과목을 가르친 뒤 2학년 때 전공을 찾아가게 하는 등 학생 선택권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수업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진행하며 해외 유명 대학원 유학 실적도 좋다. 지난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한국 유학생 출신으로 학생회장에 뽑혀 화제를 모은 최유강(32)씨도 한동대 국제관계학과 출신이다.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신동아 2007.06.01 통권 5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