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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인증이 과연 무엇인가 -김대호교수

2007.03.26 Views 2142 정혜림

  이 글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이 유럽경영학교육협회로부터 EQUIS인증을 받은 후 한국대학신문으로 부터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을 받아 김대호 연구교수가 집필한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3월16일자>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한 학교의 설립자가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로채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모를 취재하기 위해 美 교육부를 찾아갔다. 교육부에만 가면 모든 것을 취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에서는 주무부서만 찾으면 사무관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므로, 학교와 관련한 사건이 터지면 잔뼈가 굵은 기자들은 교육부를 찾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힘들게 찾아간 미국 교육부에서는 학교 부정에 관련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한데 그 답변이 가관이었다. 교육부는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곳이지, 잘못을 조사하는 수사기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관선이사를 파견하거나 인가를 취소하는 한국 교육부의 ‘막강한(?)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

 


 

  할 수 없이 평소 알고 지내던 하버드대 출신 문일룡 변호사에게 급히 도움을 청했다. 현재 버지니아주 교육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문 변호사는 오히려 “정부가 무슨 자격으로 학교의 인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인·허가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위원회가 관여하지만, 그나마도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게 미국 교육제도란 설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미국은 건국 초부터 ‘교육부’라는 부서를 두지 않았다. 정부가 교육을 통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지성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최초의 대학, 하버드대가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중세의 볼로냐대(大)나 고대 그리스, 플라톤이 운영하던 ‘아카데미아’에 정부가 개입한 흔적은 전혀 없다.


 

  미국에 교육부가 신설된 것은 1867년의 일이다. 학교 정보를 수집해 국민에 전달함으로써 판단의 근거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대학 입시에 개입해 논술시험의 유형까지 제시하고, 이를 어긴 학교에 벌금을 물리는 한국의 교육부와는 기본 발상과 뿌리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나마도 유야무야 되다시피 해 정부 조직으로서의 교육부는 이내 없어진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대통령 산하의 행정부서로서 오늘날과 같은 교육부가 탄생한 때는 1980년. 서민층 권익 확대에 주력했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빈익빈 부익부’ 악순환의 고리가 교육이라고 판단, 저소득층에게 교육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자는 취지로 교육부를 만든 것이다. 미국 교육부는 지금도 이러한 설립 정신에 따라 정부 예산으로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방향을 제시하고 교육자들로 하여금 강제로 따라오도록 만드는 강압적인 교육 행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교육부가 없거나 있더라도 일선 교육기관에 전혀 개입하지 않음에도 미국·유럽의 교육기관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비결은 바로 자율적인 ‘인증’ 시스템에 있다. 민간 교육기관들이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해 우수한 명문대학을 선정, 교육 수요자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중세의 길드 조직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통치자의 철학에 따라 판단 기준이 수시로 변하는 정부보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업종을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학교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로, 공권력이나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부보다는 서로의 속사정을 잘 아는 학자들간 상호평가가 더 정확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사립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기관을 교사와 학자들의 평가에 의해 우열을 나눈다. 특정 정치세력의 입김 없이 오로지 교사·교수들의 잣대로 학교를 비교하는 것이다.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자 선의의 경쟁을 벌여온 일련의 과정이 선진국 일류 대학들의 교육 경쟁력을 낳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평가가 바로 오늘날의 인증이다.


 

  경영학의 뿌리인 근대 상학의 역사는 1819년에 출범한 파리 ESCP-EAP에서 부터 시작됐다는 게 경영학사의 통설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경영학을 도입한 와튼 스쿨의 경우가 1881년의 일. 20세기에 들어서 경영대학의 수가 급증해 옥석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자, 앞서가던 상학·경영학자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인증 제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세계적 공신력을 가진 경영대학 인증기관 AACSB는 이 같은 시대 상황 속에서 1916년 태동했다.


 

  이때부터 AACSB의 인증을 받지 못한 학교는 대학이 아닌 사설학원과 같이 취급됐다. 지난 한 세기, 국내 명문대를 졸업한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유럽 유학에서 한국에서 취득한 학점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우리 대학 중에 인증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은 한국에서도 10여개 대학이 AACSB 인증을 받고 있다. 더구나 고려대 경영대학은 최근 국내 최초로 유럽의 EQUIS 인증까지 획득했다. 유럽의 EQUIS 평가 기준은 미국 AACSB보다 더 높다. 우리 경영학의 권위와 질적 수준이 미국과 유럽 양 대륙에서 공인받은 일대 사건인 것이다. 이번 고려대 경영대학의 EQUIS 인증은 스스로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한국 경영학의 세계 정상급 수준을 증명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경영학계에서의 ‘인증’이란 결코 한순간의 선전용이 아니다. 요구 조건을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면 중도 탈락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도 자극제가 된다. 비단 고려대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명문대들이 EQUIS 및 AACSB 등의 인증을 받아,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세계무대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대호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대학신문> 2007/3/16 2:31PM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