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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France] ESDES 장은하 2009-2

2010.03.29 Views 847 경영대학

                       

 

 

   나에게 외국에서 몇 달 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교환학생이었다. 내게 교환학생은 외국 대학에 가서 외국어를 배우고 글로벌 감각을 익히는 것이 주된 목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부모님과 주위 친구들에게 포장되어 말해질 핑계에 불과했다. 난 내가 누군지 찾고 싶었다.

 

   내 취향은 무엇일까? 무엇이 내 가슴을 그토록 뛰게 하는가? 난 언제 가슴 터질 듯한 환희를 느끼는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과 향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2008년 겨울. 난 나를 찾는 작업에 한창이었고, 교환학생이 이 시점의 이러한 나의 고민들을 해결해주길 바랬다. 교환학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교의 명성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길 원하는 영어권의 나라에 가길 원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스스로 나를 찾는데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여야 했다.

 

난 연필을 한 자루 꺼내 다이어리에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1. 박물관, 미술관 미친 듯이 다녀보기

2. 세계 희귀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 섭렵하기

3. 와인 다양하게 마셔보기

4. 세계 여행

5. 나만의 평생 취미 갖기 (감성적 글쓰기)

6. 여유와 멋을 배우기

7. 쇼핑 원없이 해보기

8. 예술적인 삶 느껴보기

9. 파티 주최하기

10. 스포츠 즐기기

 

   1번부터 차례대로 적어 나가다보니 끝이 없었다. 나의 wish list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떠오르는 나라는 딱 한 군데! 프랑스였다. 교환학생을 가려고 했을 때 떠오른 도시는 파리와 뉴욕 딱 두 군데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학교에 교환 협정을 맺은 학교가 뉴욕에는 없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프랑스에 있는 학교를 택하게 되었다. 꽤나 쉽게 나라와 학교를 정하게 된 셈이었다. 지원서를 쓸 때에도 지원학교가 5지망까지 있었지만 난 5지망까지 쓸 필요가 없었다. 가고 싶은 학교는 딱 한 군데 뿐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니 선택의 폭도 좁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2008 1, 교환학생 선발이 끝나고 2월 초 발표가 났다. 난 운 좋게도 ESDES란 프랑스 그랑제꼴 학교에 합격이 되었고 꿈에만 그리던 프랑스 행이 확정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파란 눈 그리고 금발의 외국인들과 섞여 생활할 나를 매일 상상하는 일은 정말 가슴 설렌 일이었다.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프랑스의 삶은 현실로 다가왔다. 난 좀 더 구체적인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상상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계획은 조금 달랐다. 어느 하나도 예측되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상상 속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 뛰는.

   일단 나만의 감각과 취향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유럽이기에 처음 맞이하는 유럽의 나라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겠지. 그들만의 색감과 느낌을 글로 그리고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어.

   Face book where I''ve been이라는 프로그램은 내가 지금껏 어느 나라들을 다녀봤는지, 그 나라의 느낌은 어땠는지에 관해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나 역시도 프랑스에 살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었는데 내가 여행한 나라들을 쭉 입력하면 전 세계의 몇 퍼센트를 여행한 것인지 나오게 된다. 난 기껏해야 2% 정도. 하지만 다른 외국인 친구들의 where I''ve been을 살펴보면 5%, 10%가 넘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하나의 사이트를 통해서도 그들의 글로벌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였다.

 

   나만의 차별화 전략을 만들고 싶었다. 유럽시장의 패션 트렌드, 유통시장 분석을 통해 향후 내 꿈에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다. 쉽게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파리지엥, 밀라네제들의 스트릿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했다. 유통업체 분석은 백화점, 할인점, 체인점 등등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할 때에도 항상 똑딱이 사진기와 작은 수첩은 늘 함께 했다. 몇 달 간에 걸쳐 10,0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모을 수 있었고 틈만 나면 카테고리별로 사진을 분류했다. 사진이 많으니 분류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것 말고도 정말 자질구레한 계획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이어리에 적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관전하기, 프랑스 요리 5개 이상 배우기, 불어 공부하기, 잇 아이템 건지기, 매일 가계부 쓰기, 외국인 친구 많이 사귀기 등등 말이다. 프랑스에 가기 전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직접 손으로 다이어리에 쓰고 자주 보다보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고 결국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많았다. 또 한국에서는 어렵지만 프랑스에서는 여기서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어려운 게 아닌 것도 많다. 지난해 10 15일 파리에서 열린 김연아 그랑프리 1차전만해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기대 반 포기 반으로 파리에서 김연아 경기를 보리라 하고 써놨지만 표를 구할 수 있을지, 그때 파리에 있을지 등의 여러 문제로 경기를 보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기 바로 며칠 전에 표를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프랑스 사이트에서 가장 싼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한 후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표를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파리에서 본 김연아의 경기는 더욱 감격스러웠다.

 

   프랑스. 어릴 적엔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지만 이젠 어느 나라보다도 가까운 곳. 2의 고향이 되어버린 곳이다. 프랑스인들의 장난 섞인 미소, 물 없이도 끝까지 먹을 수 있는 정말 맛있는 바게트, 축구를 볼 때의 숨 막히는 열정. 프랑스는 내가 이 나라를 선택했던 이유에 너무나도 걸맞는 나라였다.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곳이 프랑스여서가 아니라 내가 이곳의 이방인이기 때문인 것을. 우울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보며 내 생각을 노트에 끄적일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