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체험수기
경험보고서(SMU)
싱가포르 경영대학(SMU)은 역사가 별로 길지 않은 학교이다. 따라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문화 및 전통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이 학교의 최대의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학교의 교수 및 교직원, 학생들은 이러한 점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이 학교만의 문화를 만들고 학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가장 큰 노력을 하고 있다.
이 학교의 도서관 문화는 다른 세계 유수의 사학과 가장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학생들은 도서관을 책을 열람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공간만이 아닌 그들의 주된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학문정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모든 학생을 하루 일과를 도서관에서 시작하고 도서관에서 마감한다. 강의가 없는 시간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학교는 이를 더욱 정착시키기 위하여 도서관에 학생들의 휴식을 위한 정원 및 샤워시설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매점, 커피숍, 식당 등의 각종 영리시설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확장된 도서관의 개념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하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도서관이 일종의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학생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 내에서의 전화통화나 노트북을 통한 음악감상 및 영화감상, 또한 다른 학우들과의 잡담마저 허용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도서관에서의 취식행위는 불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일부 학생들은 이마저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다. 이는 정작 학업이나 열람목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지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평점이 3.75 / 4.3 이상인 Top-class 학생을 First-Honor-Student라고 부르는데 이런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학생들 사이에서 파다하다.
또한, 노트북의 활용 역시 다른 학교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물론 모든 세계의 대학생들에게 노트북은 상당히 친숙한 물건이고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필수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노트북을 통해 소통하고 공부하며 생활한다. 어떤 수업은 노트북이 없으면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수업도 있다. 교수와 학생들과의 주요 대화창구는 노트북(이메일)이고 심지어 어떤 수업의 강의는 학생들의 노트북(타블렛 PC를 이용한 수업진행)이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의 정보 공유 속도와 전달 속도는 경의적으로 빠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책상에는 연필과 종이가 아닌 노트북이 하나 있을 뿐이고, 강의자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새로 강의안에 추가되는 내용들마저 실시간으로 학생들에게 전송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신속한 정보 공유와 전달은 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경쟁력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트북 문화는 커다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많은 일시적 정보의 홍수에 학생들은 진정으로 필요한 정보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되고, 강의시간의 노트북 사용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의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교수님께 집중하지 않고 모니터에 떠있는 강의자료만 들여다보고 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강의시간은 웹서핑 시간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노트북으로 인해 충실한 강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에 많은 교수님들이 수업시간 중의 노트북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학생들은 이는 자신들의 문화라며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에서 Organization Behavior and Human Resource를 연구하시는 한 교수는 사석에서 나에게 이 학교가 수업참여도를 중요시하고 팀프로젝트를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며, 예전 한국에서는 강의위주의 수업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금 한국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중요시되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 교수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이 세 가지가 싱가포르 경영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평하였다. 그 교수는 이 학교에서는 높은 SAT 성적을 가진 학생이 높은 GPA를 유지할 수가 없으며, 시험성적이 높은 학생이 높은 GPA를 유지하는 비율도 여타학교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하였다.
그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자,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수업참여도 점수를 얻기 위한 무분별한 질문을 꼽았다. 아무리 수업시간에 하는 질문 수와 수업참여도 점수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여도 학생들은 질문을 많이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도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거나 교수와의 1:1 대화를 유도하는 학생을 볼 수 있는데, 물론 수업진행에 도움이 되고 수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질문이나 대화를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질문을 하거나 사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학생들 역시 존재하며, 이들 한 두 학생이 강의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 교수는 이를 ‘수업참여’가 아니라 ‘수업방해’라고 말하며 이러한 문화는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교 방침으로 유도한 문화이지만 아직 학생들이 이러한 방침을 성숙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서 이러한 기이한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다른 학생들이 ‘수업방해’를 하는 학생들이 수업참여도 점수를 높게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업의 진행에 큰 방해요인이며, 정말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얼마나 배웠느냐,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학점에 끼치는 영향이 줄어들수록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높은 GPA를 유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우리학교를 보면, 수업시간에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이러한 점 역시 수업진행에 있어서 일종의 방해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정말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비중은 싱가포르 경영대학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원인은, 팀프로젝트를 중시하는 문화이다. 앞서서 설명했듯이 이들은 도서관을 자신의 또 다른 생활공간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팀원들을 보통 도서관에서 만나 그룹스터디룸에서 미팅을 가진다. 이러한 미팅은 시간제약이 없다. 모두들 다른 팀원들 역시 도서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제약이 없는 미팅은 학생들 개인 공부시간의 감소를 수반한다. 캠퍼스 안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에게 오늘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그룹미팅 밖에 하지 않았다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팀원들 사이에서 그룹미팅을 빨리 끝내고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하면 그 친구는 그룹원들 사이에서 프로젝트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학생으로 인식되어 버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조원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들 미팅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음을 알고 있고, 미팅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사리 조정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연히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더욱 완벽히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프로젝트 준비에 소모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같이한 팀원들 간의 학점차이는 별로 나지 않고 이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은 우리 학교와 조금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학교이다. 위에서 열거한 신생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문화를 얼마나 좋은 쪽으로 만들어 가느냐가 이 학교가 풀어야 할 선결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