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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은 4월 30일 “국제인증제 더 이상 ‘계륵’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국제인증 획득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보도했다. 여기서 이 신문은 고려대 경영대학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EQUIS 인증과 AACSB 인증을 받은 대학”으로 소개하며 인증 획득의 까다로운 절차와 획득 후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자세히 설명했다. 기사 원문은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정명아)
국제인증제, 더 이상 ‘계륵’ 아니다
국제사회 카르텔···대학·정부 인식전환 시급
고려대 LG-포스코경영관 4층. 동아제약 회장의 이름을 딴 ‘강신호 강의실’에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강의실 강단 컴퓨터는 중앙 프로젝터로 연결, 수업 내용이 바로바로 나온다. 중앙 4층 통로를 따라 본관으로 이동한 후, 뒤편에 있는 복도를 지나 도착한 별관 EXCUTIVE라운지 한쪽 벽면에는 학생 이름별로 정리된 자료가 칸칸이 쌓여있다. 상당한 분량이 항목별로 꼼꼼이 기재, 커리큘럼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국내대학 중 처음으로 ‘EQUIS(The European Quality Improvement System)’ 인증을 받은 고려대 경영대학의 모습이다.
‘EQUIS’는 유럽관리능력개발재단이 1997년 시작한 국제 경영학인증이다. 교육환경, 교수진·학생 자질, 지역사회공헌도 등 11개 심사를 거치며, 현재 프랑스 인시아드, 영국 캠브리지대학 등 전 세계 30개국 105개 경영대학만 이 인증을 받았을 정도로 까다롭다.
강의실에서 만난 한혜민군(경영학부2)에게 ‘EQUIS가 뭔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한군은 “졸업하면 유럽에서 수료한 것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인증제도로 알고 있다”며 “수업이나 강의환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남동우군(일반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3학기)도 “군대를 다녀오니 시설이 많이 변해 있더라”며 “시설 면에서 다른 대학과 비교가 안 된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외국인도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교수진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항목에서 서울대나 연세대를 앞섰다고 들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또 “유학을 다녀온 선배 말로는 ‘예전엔 고려대보다 연세대를 더 알아줬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더라”며 현재 고려대 경영대학의 위상을 설명했다.
지난달 13일 세계경영대학협의회(The Association to Advance Collegiate Schools of Business 이하 AACSB) 인증을 받은 세종대도 분위기가 한껏 들떠있다. 세종대는 정문 왼편에 자리한 대양홀 벽면에 ‘세계 최고 권위의 AACSB 인증취득’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광개토관에도 인증을 자축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미국 4,000여개 경영대학 중 400여개가, 아시아에서는 10여개 대학만 이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고려대(학부·대학원), 서울대(학부), 카이스트(대학원), 세종대(학부·대학원)가 전부다.
이 인증을 아직 받지 못한 대학은 지난 달 열린 미국 AACSB 연례회의에 참석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연세대 외에 한양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국내 10여개 대학이 인증절차를 받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르텔’ 같은 국제인증제. 혜택 크지만 획득과정 소음 많아
‘인증제도’는 제3자(인증기관)가 규정된 요건에 적합하다고 공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증기관은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고, 평가한 사실을 문서화한다. EQUIS와 AACSB와 같은 국제인증은 인증기관에 신뢰가 높아 국내외 경영대학이 선호하는 인증제도다. 인증대학은 서로 학점을 교류하고 교수·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한편, 대학간 협정을 체결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인증을 받지 않은 대학은 사설학원으로 평가절하 받기도 해 ‘카르텔’로도 통한다.
교류대학 간 학점교환은 국제인증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난 2월 아시아 대학 중 처음으로 국제항공교육인증위원회(Aviation Accreditation Board International 이하 AABI) 인증을 받은 한국항공대(항공운항학과 비행교육, 경영학과 항공경영, 항공교통물류학부 항공교통시스템·항공교통관제프로그램 등 4개 프로그램)는 앞으로 해외유학 파견이 원활해지고 졸업생의 해외항공사 취업이 크게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광의 항공대 기획처장은 “현재 아리조나 주립대학과 플로리다 공과대학과 협정을 맺기로 했다”며 “금년 말 협정이 체결되면 학생들이 오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혜택이 큰 만큼 최소 몇 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EQUIS인증과 AACSB 인증을 받은 고려대 경영대학은 7년 전부터 장기계획을 세워두고 착착 실행했다. 세종대는 AACSB 인증을 받기 위해 3년을, 항공대는 AABI를 위해 2년 6개월을 준비했다.
하지만, 인증을 받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준을 맞추려면 상당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는 2005년 2학기 AACSB 인증을 앞두고 수강인원 초과 사태가 일어나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인증 기준에 맞춰 대형강의를 없앴지만 분반을 할 수 없어서였다. 분반을 하면 강사가 강의를 맡아야 했는데, 그럴 경우 인증 기준을 맞출 수 없었다. 고려대 한혜민군(경영학부2)은 당시 상황에 대해 “4학년부터 수강신청을 받았는데 전공과목이 다 차버려 2·3학년이 곤혹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세종대의 경우, 경영대학이 AACSB 인증을 받겠다고 하자 학내 다른 대학의 반발이 있었다. 황호찬 경영대학원장은 “외부에서 기금을 많이 끌어오는 일부 대학과 달리 대부분 학교는 정해진 예산에서 학부끼리 서로 나눠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인증을 받으려면 상당한 재원을 집중해야 하는데, 이 경우 다른 학부에 불가피하게 피해가 갈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지만, 한정된 예산이 쏠리다보니 대학의 다른 구성원은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국제인증제는 ‘계륵’? 인식전환 안하면 후폭풍 피해 상당
이처럼 몇몇 대학이 개별적으로 국제인증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작년에 내놓은 ‘UNESCO/OECD 고등교육 질 보장 가이드라인에 대한 대응방안 보고서’는 이를 크게 우려할 만한 문제로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사회는 국경을 넘는 고등교육의 질 보장을 위해 대학 자체와 외부 질 보장 체제를 갖추고, 관련 활동·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은 “가이드라인이 국제법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강제 이행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대학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국내 대학이 외국학위의 국내 인정과 국내 교육프로그램의 국제인증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학위취득을 목적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학위는 그대로 인정하지만, 반대로 우리 학생이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나갔을 때 국내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국내에 제대로 된 평가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던 이병식 박사는 “고등교육 질 보장 체제를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하도록 혁신해야 한다”며 정부에 조속히 평가체제를 혁신하라고 촉구했다.
고려대 경영대학 김대호 교수도 “BK21처럼 현재 상황을 보고 지원을 해주면 대학경쟁력이 올라가느냐”며 “교육부가 현재와 같은 ‘돈으로 길들이기’ 방식을 이어간다면 결국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상위권 대학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소득층에 교육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미국 교육부를 들어 “보완체제로 인증제도가 자율적으로 작동해 우수 명문대학을 선정하면 대학끼리 경쟁하고, 자연스레 학생이 몰린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다만 우리대학의 경쟁력이 상당한 위치에 오를 때까지는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안에 인증제를 받겠다, 이런 노력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며 “이대로라면 결국 하위권 대학은 교육개방 시 무참히 쓰러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정부의 문제와 더불어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모르는 대학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병식 박사는 “UNESCO/OECD 가이드라인은 향후 국내에 미칠 효과가 상당한데도 대부분의 대학이 잘 모르고 있었다”며 대학의 분발을 촉구했다.
국제인증을 받은 대학은 하나같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수업의 질을 국제인증제를 받는 과정에서 개선했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교육시장 개방에도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고가 굳어버린 정부와 대학들에 여전히 국제인증은 받자니 어렵고 안받자니 찜찜한 ‘계륵’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개방 이후 들이닥칠 후폭풍을 고려할 때, 이 계륵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