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체험수기

[Spain] ESADE Business School 2015-2 김윤영

2018.01.29 Views 2633 경영대학

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2015년도 2학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ESADE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경영대 14학번 김윤영입니다. 교환후기를 작성하며 제 한 학기를 돌아보는 동시에 다음 학기 교환학생을 준비하시는 학우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교환후기가 ESADE를 준비하시는 학우분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교환에 대하여 고민하시는 분들, 교환 학기 중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으신 분들, 혹은 이미 다녀오셨거나 아직 교환에 대한 생각은 없지만 꿈꾸는 젊은 날을 보내시는 모든 분들께 보내는 편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먼저 양해를 구할 점은, 이 교환후기는 ESADE의 여타 행정적인 부분이나 챙겨야 할 준비물 같은 것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다녀왔던 시기가 이미 2015년도였으니 먼저 다녀오신 다른 학우분들, 또 후에 다녀오신 학우분들의 교환후기에 이미 너무나 상세하게 잘 나와있고 그에 첨언할 아주 미세한 차이의 부가적 정보들보다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하기 때문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후기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교환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의 중요성, 그에 따라 교환학기를 어떻게 구상하였으며, 이를 준비하는 태도와 노력, 어려움과 극복에 대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형식과 내용의 후기가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 제가 교환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주위에 자문을 구하고 고민했던 부분이자, 교환을 떠나려고 계획하거나 지금 교환을 가 있는 친구들이 실질적으로 방향성을 잃거나 가장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때 이러한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는 부분을 다루고자 한 점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후기를 읽으실 때에는 잠시 머리 아픈 행정절차에서 눈을 돌려 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2. 교환의 목적 설정
(1) 일반론
먼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교환의 목적 설정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교환학생 지원서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은 바로 교환을 왜 가고 싶으냐, 왜 이 국가, 이 학교를 선택했느냐의 질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다 가기 때문에, 모두 다녀오면 좋다고 하니까, 라는 부차적인 대답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왜, 교환학생을 가고자 하시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학 공부를 해외에서 더 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영어 회화를 해외 환경에서 지내면서 실력 향상을 시키고자 하거나, 혹은 영어 이외의 제 2 외국어가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선택하고자 하는 국가가 너무 좋아서 그 국가의 문화를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마음을 터놓는 깊이 있는 친구로 지내보고 싶은 것이 목적일 수 있습니다. 유수의 대학에서 좋은 교수님들께 수업을 듣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환학생을 갈 때에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들도 스스로 새로 만들어가는 선택의 바다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였을 때와 같은 갑작스러운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하며 한 학기를 구상해 나가는가를 통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교환학기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환의 목적을 되새기며 그 우선순위에 맞는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잡으려고 하면 모든 것에 발만 담가 보기만 하고 한 학기가 지나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그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한 단계 넘어서서 새로운 것들을 보실 수 있는 시각이 열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한 가지에 집중을 하다보면 한 학기가 지나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것들이 이미 따라와 있는 선물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옆에 종이가 있다면 써 보셔도 좋습니다. 워드를 켜서 타이핑을 해 보셔도 좋습니다.
왜 교환학생을 가고자 하십니까?
목표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가 그러하다면, 그럼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그 땅을 딛자마자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고 교환학생 지원서에서도 먼저 묻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 가치관과 방향성 결정
이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제 교환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교환학생을 가겠다는 것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더 큰 세상 속에서 제 가치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목표의식이었습니다.
 
제 가치관이라 하면,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바라보며 행동하며 살아오며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삶의 과정이 소위 말하는 “모범적인” 한국의 개신교인으로서의 경험이었고, 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적들을 체험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문을 하면 할수록, 너무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지구상의 수많은 불공평해 보이는 절망, 가난, 악한 일들을 파고들수록,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솔직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의 “실패” 앞에서 밑바닥을 경험하고 일어설 힘이 없이 무너지는 제 모습을 발견하면서, 전지전능하고 세상을 창조하였다던 신의 존재가 한낱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설혹 그런 신이 있다고 해도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제 삶의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부인하고 나니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아가 산산조각이 났고,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고자 이곳 저곳을 두 발로 뛰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의 답을 찾고자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너무 억울했던 것은 학문의 영역에서마저 그 끝에 가서는 결국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존재를 부인하고 이를 증명하고자 했는데, 결국 이성적으로도 원점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라는 곳을 가보면 사람들이 정말 이상하게 달랐습니다. 저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정말 억울하였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교환학생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 그러면 무엇인가 발견하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였습니다. 배낭여행은 그 이전에 여러 곳으로 다녔지만, 그것보다 한 곳에서 잠시나마 정착하여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정 가운데 여러 수기를 읽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목적설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워드를 켜서 적듯, 혹은 펜을 들어 종이에 적든, 저도 적었습니다.
 
내가 교환을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세계, 살아보는 것, 언어, 문화, 다양한 사람들, 여행, 친구, 수업….
 
다 적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하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다가 몇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아주 큰 글씨로 적었습니다.
 
‘진리’
 
제가 여러 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던 이유 앞에서, 교환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 속에서, 감추어져 있던 양파껍질을 모두 벗기고 나니 명확해졌습니다. 아, 나는 진리를 찾고 싶어하는구나. 그러고 나니 참 명쾌하게도 제 교환의 목적이 정해졌습니다. ‘나는 진리를 찾아 교환학생을 간다.’
 
이러한 과정이 얼마간 더 심도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교환학생에 가서 진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진리의 영역들을 검토해야 했고, 학문, 돈, 명예, 성공, 종교 등을 거쳐 결국 한 가지로 좁혀지게 되었습니다.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의 신이 진짜인지를 알아봐야겠다. 교환 기간을 통해 우리 부모님이 믿는 신, 서울의, 한국교회의 신이 아니라, 정말 신이 살아있고 전지전능하고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고 있다면 전 세계에서 역사해야 하는데, 그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진짜 이 고민도 지겹다.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며 세상에 한 쪽, 신에 한 쪽, 양다리를 걸쳐놓고 걸어가자니 다리가 찢어질 것 같다. 이제는 결정할 때가 되었다. 진짜 그 신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내 모든 인생을 거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떠나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무식하고 대담한 목적설정이 인생의 질문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었고, 또 교환학기의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추상적인 단계이긴 하였지만, 정말로 그 이유를 찾았을 때에는 오랜기간 교환학생의 목적을 고민한 후 얻어진 아주 큰 결실이자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종이에 무엇을 적으셨습니까?
얼마나 고민하고 계십니까?
초라해 보이십니까? 무식해 보이십니까?
상관 없습니다. 무엇을 적든 가장 진솔한, 그리고 가장 솔직한 여러분의 마음을 적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느리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있는 현 시대의 문화 가운데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을 느낍니다.
 
(3) 교환국의 설정
사실 목적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떤 국가를 가든 이러한 생각 하나만 붙잡고, 그 목적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역설적이게도 국가를 정할 때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막막한 부담감과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습니다. 영어 사용국도 좋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스페인어를 공부하였기 때문에 스페인어 사용국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유럽이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기 편리하다는 특성 때문에 조금 더 제가 접하고자 하는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을 손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하고자 하였고, 유수의 학교를 가고 싶다는 복합적인 면들을 고려하여 몇 학교의 리스트를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결정된 것이 바르셀로나의 ESADE였습니다.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르셀로나는 이 거창한 ‘진리를 찾는 여정’의 출발점이 되기에 저에게는 맞춤형으로 가장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국가를 적으셨습니까? 무슨 커리큘럼의 학교, 어떤 도시의 학교를 적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학교는 여러분의 목적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3. 교환학기의 시작
(1) 난관의 시작
그렇게 결정된 ESADE의 교환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진하게도 꽃밭을 꿈꾸며 그 학기를 시작하였던 저는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잘 풀릴 것이라 믿었고, 학교에서 사람들을 사귀는 것도 쉽고, 들어가 살게 된 집에서 어머니와 쌍둥이 두 아이들과 대화하며 스페인어 실력도 순식간에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참 재미있었던 것은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들 앞에서 저의 앞서 설명한 그 원대한 포부는 잊었다는 점입니다. 진리는 무슨, 다시 미시적인 것들, 긴박하게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들에 적응하느라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여러 일들에 휩쓸리기 시작했습니다.
 
담대하고 무식하게 그런 포부를 품고 갔으면 그 포부대로, 생각한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좀 버틸 것이지, 어쩌다보니 레벨테스트 결과가 그렇게 나와 들어간 첫 두 주의 스페인어 어학코스 고급반 중 가장 높은 난이도의 반이었던 Español Avanzado 3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는 혼자 집에 돌아와 스스로에 대하여 분을 삭이지 못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분명히 교환학생들이 모인 특별코스인데, 왜 그 반에는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이 모여있고, 동양인은 저 혼자고, 글 쓰는 것은 몰라도 말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렵던지… 수업 외 시간에는 전부 영어로 말했지만, 이미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주눅이 들어 저도 모르게 괜히 위축되었습니다. 물론 언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배려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만 느껴지던지. 부담스러웠던 장벽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랍니다.
 
지금 교환학기를 보내고 있으면서 이 글을 다시 보는 분들께 여쭙니다.
여러분의 계획대로 되고 있습니까? 친구를 하루 빨리 만들고 싶은데 그렇지 못합니까? 속상해서 울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감히 말씀드립니다. 울지 않으셔도 됩니다. 좌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은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2) 목적의 구체화
이렇게 몰려오고 스스로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진행되던 가운데 다시 한번 교환학생의 목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나? 신의 존재가 있으면 거기에 삶을 건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들이 그럼 정말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의 본질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그래서 저는 학기가 시작하고 몇 주가 흐른 다음에서야 명확했지만 추상적이었던 ‘목적’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들어갔습니다. 그래. 신의 존재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아, 교회. 교회에 신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어느 교회를 가야하지? 한인교회가 많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나는 한국의 신을 넘어서서 전 세계의 신을 보아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나는 이 곳 바르셀로나의 지역교회나 국제교회를 가야한다.
 
그래서 알아보고 검색하며 발견한 곳이 ICB(International Church of Barcelona)였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화요일에 그 교회를 알게 된 이후 집에서 2.5km정도 떨어진 그 곳에 걸어서 가 보았던 것입니다. 저녁에 혼자 산책을 나가 그 앞에서 한바퀴를 돌고 돌아왔습니다. 수요일도, 목요일도, 금요일도, 그리고 그 전 날인 토요일까지도. 일요일에 보자, 하고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저의 이러한 구체화 작업이 너무 늦었던 것일까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런 것은 이미 끝내놓아야 했던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가장 알맞은 시기였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제가 진짜 목적으로 돌아오며 고민할 수 있었던 중심을 확인하는 것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늦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예,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판단은 금물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알맞은 시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새로운 시작
그리고 그렇게 ICB를 갔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종도 피부색도 배경도 다르고, 성별 및 나이도 다른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그 곳에서 한국과 똑같은 신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그 출처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했습니다. 결국 그 사랑의 출처가 정말로 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있다 없다,의 문제를 떠나서, 믿고 싶다,로 생각이 전환되었으며, 늘 이성적인 판단을 앞세우던 제가 믿던 그 이성이 무너지는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한 발짝 내딛었습니다. 이성을 믿어왔던 것을 내려놓고, 그 이성마저도 창조하였다던 신의 존재를 믿어보기로. 받아들여보기로.
 
참 신기했던 것은 그때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그것이 믿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ICB는 저의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전환점이자, 이미 시작한 교환학기에서 또 다른 새 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제2의 고향이 있습니까? 새로운 출발점이 있습니까? 교환학기를 겪고 계신 분들 중에서는 어떻습니까?
새로운 시작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가져왔던 가치관이 송두리째 뽑히는 것 같을 때 반응하기를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교환학기의 변화
(1) 사람, 나라, 그리고 눈물
저는 그 날 바르셀로나의 다른 유수의 학교로 교환학생을 온 네덜란드 친구 Karine를 만났고, 그 때는 그렇게 될 줄 몰랐으나, 그 한 학기 내내 삶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며 함께 곳곳을 돌아다니고 여행하며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은 교환후기를 쓰는 관계로 미래의 시점에서 타임 리프하여 당시를 회상하자면, 2015년 교환학기가 끝나고 몇 주 만에 끊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던 연락이 계속 이어져 2017년 여름에는 3주 동안 Karine가 한국에 와서 저희 집에 머물고 한국을 둘러보며 서로의 꿈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 연락하며 생사고락을 나누는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또한 독일, 프랑스, 남아공, 페루, 브라질, 호주, 미국,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친구들과 매주 함께 따로 모이면서, 그 친구들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똑같은 신을 믿는다는 공통점 하나로, 혹은 아직 믿지 않더라도 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냥 먹고 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부터였습니다. 눈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제가 친구들을 위하여, 친구들의 가족을 위하여,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던 것이. 브라질에서 큰 화재가 나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면 그들을 위하여 함께 울었고, 당시 테러가 본격화되는 초기였는데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하였을 때 친구의 고향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울었고, 페루의 아픔과 곳곳의 범죄에 대하여 함께 마음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함께 있으면서 한 것이라고는 그냥 같이 먹고 떠들고 운 것 뿐이었습니다. 제 평생의 소원이었던 남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보고 싶다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른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들과 함께 울고 나니, 거리가 느껴지고 문화적인 차이로 더 조심스러웠던 학교의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것이구나. 그래서 상처받을까 두려워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며 관계를 ‘관리’하였던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마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상처 받으면 좀 어때.
 
그리고 그렇게 다가가서 사랑을 퍼주려고 할 때 깨달았습니다.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의 상을 설정해놓고 그 길로 성공을 찾아서 가는 것이 답이 아니라 먼저 상처받을 각오로 아무 벽도 세우지 않고 다가가서 마음을 줄 때 자연스럽게 그 요건들이 갖추어진다는 사실을. 내가 완벽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나 자신처럼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무엇인가를 할 동력을 얻고, 열심을 내게 되고, 함께 울면서 함께 고민하며 씨름하며 진정한 공부가, 문화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이, 학문의 통섭이 시작된다는 것을.
 
후기를 읽고 계신 여러분 역시 글로벌 인재가 될 멋진 분들입니다. 언어, 문화, 인종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할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리더가 될 사람들입니다. 물론 지혜로운 전략적인 접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머리를 내려놓고, 관리를 내려놓고 그냥 마음을 열고 세계에 다가가보셔도 좋겠습니다. 정말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는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5. 교환학기의 결과
(1) 꿈? 꿈!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그 중 저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꿈이 제 꿈으로 끝나 개인적인 어떤 업적이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후기를 읽는 학우분들도 함께 꿈꾸며, 함께 품고 같이 이루어나가는 꿈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교환학기 중 짬을 내어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던 중 한 번은 스페인 접경지역의 작은 도시국가 Andorra를 가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7만이 조금 넘고 스페인에서 버스로 간단하게 왕복 가능한 이곳에서 친구와 이박삼일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도시를 둘러보고 아이쇼핑을 하면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이 다가와 그 곳의 교회를 가 보고자 알아보았습니다.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국제교회는 없었지만, 다행히 Andorra는 스페인어 사용국이었고 함께 여행한 친구도 스페인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현지교회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신앙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마음 편히 신을 믿을 수 있지만 세계 곳곳의 신앙의 자유가 없어 신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임을 당하고 핍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면서 영상을 보는데, 박해국들의 다양한 순위들이 나오며 맨 마지막 1위로 ‘북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속의 인물은 북한 당국의 잔혹한 박해를 증언하였습니다. 자막은 스페인어로 써 있었지만 음성은 한국말이었습니다.
 
그 때, 지난 6개월 내내 영어와 스페인어만 듣던 제 귀에 들려오던 그 함경북도 사투리가 얼마나 귀에 팍팍 와 꽂히던지. 아니, 귀가 아니라 마음에 와서 칼날처럼 찌르던지. 그 증언이, 그 아픔에 대하여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도 진심으로 돌아보지 못했던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드러내던지. 아니 오히려 겉보기에는 관심을 꽤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였지만, 그 ‘북한’ 혹은 ‘통일’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제 개인적인 명예와 성공을 얻고 싶어서 발로 뛰었던 과거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드러나고 무너지던지. 그들을 위해 우는, 여행하기 전에는 어딘지도 몰랐던 작은 도시 국가의, 열 명도 채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몸이 불편한 한 젊은이가 모이는 아주 작은 교회의 모습을 보고 어찌나 부끄러움이 몰려오던지.
 
그 철저한 무너짐 이후, 다시는 그 마음을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깨닫고 나니 그 이기적인 마음이 있던 자리에 제가 진리라고 믿게 된 것을 조금은 더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저는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calling, 즉 소명이라고 부르더군요. 이기적인 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저는 이 교환학기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또 다시 바삐 흐르는 삶에 치여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의 정석을 밟아나가기 위해 애를 쓸 것이 확실했습니다. 모두 말하는 성공의 넓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었고, 늘 그래왔듯 성취를 향해 달려가면서, 교환학기 때 전 세계의 사람들과 나라를 위하여 흘렸던 눈물이 어느 순간 다시 매말라 있을 것이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우선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평생 세계를 품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우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세계를 직접 돌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먹는 삶을 살아야하겠구나. 그래서 그들이 내 진정한 ‘이웃’이 되도록, 이기적인 내가 잊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되겠구나. 그런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내 삶이 힘들고 지쳐서 세계를 품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다른 국가로 가서 생활해야 하는 직업. 그래서 결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직업.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과 얽힌 문제를 당사자 및 여러 국가들과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는 직업.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나 명확하게 좁혀졌습니다.
 
‘외교관을 하고 싶다.’
 
교환학기가 끝난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8년 현재, 그 출발점으로 외교관 후보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계로 뛰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경영학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경제학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학이 될 수 있고, 또 정치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교육학이 될 수 있고 어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이 될 수도 있고, 의학이 될 수도 있으며, 공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꼭 저의 경우처럼 북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중국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칠레일 수 있습니다. 나미비아일 수도 있구요. 영국이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인가, 어떤 국가인가가 아닙니다. 학우 여러분께 감히 도전합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무슨 생각으로 그 꿈에 도전하는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가슴 뛰는 그 일을 찾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몸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5. 나가며
이 후기를 적으면서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무리 강렬했다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어느 새 희미해 보이는 교환학기 당시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학우분들께 가장 도움이 되는 부분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다시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당시의 일기를 펼쳐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문제라기 보다는 삶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교환학기는 삶의 어떤 단절된, 인생의 유일한 낙 혹은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니라, 그저 삶의 연속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통해 삶의 방향성에 대한 키를 어떻게 잡느냐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우에는 누구보다 교환학기가 즐거웠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유로움을 누렸지만, 참 재미있는 것은 그 삶이 그 때가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교환학기를 다녀와 서울에서 다시 학교를 다닐 때에도, 시험 준비를 결정하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여 고시촌에 들어와 매일매일을 보내는 이 시간마저도 교환학기와는 또 다른 기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교환을 다녀오기 전후의 상황이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교환의 목적인 가치관의 재발견은 제 자신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혹시 지금 교환학기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너무나 축하드립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목적을 설정하는 그 시간부터 시작하여 지금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학우분들의 교환생활은 제 교환학기보다 배로 풍성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교환학기 중에 있으십니까? 혹시 생각대로 학기가 풀리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 이 때가 가장 알맞은 타이밍이고,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속상해서 마음껏 울어도 좋습니다. 운다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새 출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미 교환학생을 다녀오셨습니까? 혹시 어차피 나는 이미 다녀왔고 늦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이 교환후기의 목적을 제가 명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것이므로 사죄드립니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어떤 한 사람의 “성공적인” 교환학기를 전달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교환학기를 통해 얻었던 것이 결국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질문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우분들도 교환학기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속에서, 그 이후의 삶 가운데 보화를 발견하기를,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교환학기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에 학우분들을 초청합니다.
교환학기를 통해서든, 다른 계기를 통해서든, 짓눌리지 말고 당당하게, 자유하게,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함께 꿈을 꾸며 전진하여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긴 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