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체험수기
기억을 더듬다
2013학년도 1학기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강지예
1. 기억을 더듬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벌써 7개월이 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교환 경험보고서를 국제실에 제출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압박감에 글을 적는다. 적으려 하니 뭐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교환학생 시절에 특별했던 추억 같은 것도 떠오르지 않고, 무엇보다도 사실 나는 교환학생 시절이, 여느 교환학생이 그러한 것처럼, 크게 기억에 남거나 즐겁지 않았다. 내 원래 삶의 연장선처럼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했다. 어쨌거나 지금의 내 상태로서는 뭐라도 생각나면 적을 수밖에 없겠다. 시간도 너무 많이 흘러서 기억이 희미해졌거니와 딱히 좋았던 기억이 없다.
2. 나는 왜 USC를 선택했는가
우선, 나는 왜 교환학생 가기를 선택했는가? 조금 속물적이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왜 가지 않아야 하는가? 사실 딱히 갈 이유도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가지 않는 것보다 가는 편이 조금 더 낫겠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경영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다른 여느 학교보다 더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한번쯤 활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가지 않는 것보다 가는 편이 내 평범했던 삶을 조금이나마 더 다채롭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교환학생 가기를 선택했다.
다음으로, 왜 미국을 선택했는가? 나는 이미 고등학생 때 1년간 미국 시애틀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이후 혼자 한 번 더 가봤지만 여전히 미국은 나에게 조그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충분히 미국을 알지 못했다는 또는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미국으로 인도했다. 사실 나는 미국의 어느 학교라도 상관이 없었다. 내 1지망은 UPenn이었고, 다음 2지망이 USC였다. 나는 UPenn에 떨어지고 USC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갔다.
3. Bother Me Not
‘Bother Me Not’은 USC에서 교환학생 시절 나의 카카오톡 상태알림말이었다. 이 말은 ‘나를 방해하지 말아 달라’라는 뜻이다. 나는 물망초의 영단어 ‘forget-me-not’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의 교환학생 경험은 매우 평범했기에 특별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교환학생들과는 매우 ‘다른’ 교환학생이었다. 현지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악착 같이 노력하지도 않았고 주말마다 주요 도시들에 반짝 여행을 다녀 오지도 않았으며 할 수 있는 한 미국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폐쇄적인 삶을 영위했다. 전공으로 20학점을 채워 들었고 누가 불러내도 95% 이상 거절했고 최대한 학교-집-도서관을 전전했다.
나는 교환학생 시절 지금껏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4. 수업에 관하여
(1) Critical Philosophy of Kant
이 수업은 철학과 전공 수업이다. 나는 철학과 이중전공생이다. 미국 대학교에 가면 거기서 철학 수업을 한 번쯤 꼭 듣고 싶었다. 한국의 것과 어떤 차이가 나는지 늘 궁금했고, 그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이 수업이 내가 USC에서 들었던 다섯 수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수업인 것 같다.
우선은 이 수업이 행해진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이 수업은 USC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안의 대학교다운 강의실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 건물의 이름이 뭐였더라. 경영대 맞은 편에 있는 건물로 입구는 어떤 열린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중앙에는 푸르고 맑은 물이 담긴 우물과 주변의 벤치들로 이루어진 작은 정원이 들어 있다. 이 건물의 창은 상당히 큰데 아주 두꺼운 유리로 아치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낡지만 고풍스러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작고 개인의 서재 느낌이 나는 철학과 도서관이 있다. 거기 앉아 있으면 아주 시원해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다음은 이 수업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 수업은 칸트의 유명한 저작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면서 진행되었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의 원전을 읽는 수업이라면 그 어느 수업이라도 좋아할 것이다. 교수님 이름을 잊었는데, 그 교수님은 상냥한 분이셨다. 나이가 많이 드셨고 하얀 머리칼과 수염이 인자했다.
(2) Investments
이 수업은 경영학과 전공 수업이다. 특별하지 않고 투자론에서 배워야할 기본적인 것들 것 대해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다. 이 수업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엑셀을 다루는 스킬 정도이다. 이따금씩 회귀분석 과제를 받았는데 그것들을 수행해서 얻은 것이다.
(3) Financial Analysis and Valuation
내게 실용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수업이다. USC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RISK라는Carvalho 투자동아리를 계속 했었고, 밸류에이션은 실제적으로 많이 했기 때문이다. 주식 학회 교수님이었던가. 그 분은 마치 철저한 고등학교 교사처럼 강의하시는 분이다. 수업 시작 무렵에 지난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을 복습하고 그리고 팀 프로젝트로서 배운 것을 복습하게 하는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시험 문제는 철저하게 배운 범위 내에서 나온다. 나는 이런 수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4) Operations Management
이 수업은 정말 알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수업을 잘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는 오퍼레이션스관리에 관해선 그 어느 학부 졸업생보다 나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매일 작은 과제가 주어지고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5) Financial Derivatives
교수님 성함이 기억나질 않는다. 이 수업이 가장 어려웠던 수업이다. 우선 공부 자체가 어렵고 마음 착한 교수님을 탓하긴 싫지만 교수님이 정말 잘 가르쳐주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5. Housing에 관하여
나는 USC Housing에서 거주했다. Annenberg House라고 학교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부엌 겸 거실 1개, 침실 2개, 욕실 1나로 구성된 플랫이었고, 나는 룸메이트가 3명이었다. 나와 다른 방을 쓰는 미국인 룸메이트들은 나름 성실했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은 방을 썼던 중국인 홍콩과기대 릴리는 착한 사람이었다. USC Housing은 넓이, 청결도, 관리 면에서 나쁜 편이 아니다.
6. LA에 관하여
나는 LA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LA에서 3일째를 보내던 밤이었을까. 나는 알았다. 내가 LA를 싫어하지 않을 지언정 LA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LA는 대도시이다. 할리우드도 있고, 여러 쇼핑몰도 있고 미국 서부의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도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그런 도시이다. 게다가 주변에 놀러갈 곳도 꽤 많다. 산타모니카 해변도 있고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거스, 샌디에고 등 다른 서부 대도시들과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이 어느 것도 나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LA의 기후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자는 LA의 기후가 사계절 따뜻하고 맑기 때문에 좋아라 한다. 하지만 LA의 기후는 나에게 왠지 모를 추위를 느끼게 하고 무엇보다도 너무 건조하다. LA는 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이다. LA의 조경은 인공적인 수분으로 조성되었다. 나는 LA 도착 후 무려 한 달 반 동안을 건조함 때문에 고생했다. 내 두 눈은 건조함 때문에 항시 따끔거렸고 나는 그것 때문에 피로함을 느꼈다.
7. Spring Break에 관하여
내가 아무리 교환학생 시절의 추억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의미 있는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Spring Break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Spring Break에 ‘시애틀’에 갔었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다. 많은 도시에 가보진 않았지만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계속 가장 좋아할 도시일 거 같다. 이것은 내 고등학교 때의 추억 때문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 시애틀에서의 기억은 대부분 유쾌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빴다고 할 것은 없었다. 나는 그때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서 나름대로 얻을 것들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원하는 것들을 성취했다. 시애틀은 나에겐 도시가 매력 그 자체이다. 연중 부슬비가 내리고 습한 공기에 조금 춥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벽난로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일 수 있다. 도시는 푸른 호수와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의 느낌을 주는 그런 도시이다. 시애틀 사람들은 낙관적인 편이다. 개인적인 삶을 즐기면서도 여유가 있고 남들에게 선을 명확히 지키지만 충분한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유쾌하다. 그냥 아름답다. 아무래도 시애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LA를 동시에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다.
시애틀에서는 내가 고등학생 때 홈스테이를 했던 가족 집에 머물렀고, 내 오랜 친구 크리스티나와 어울렸다. 크리스티나는 독일인인데 내가 시애틀에 교환학생을 왔을 무렵에 만났던 교환학생 친구이다. 또다시 시애틀에서 만나게 되어 새롭고 신기했다. 가족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집과 가족들로부터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받았다. 꽤 신기한 느낌이다.
8. 터닝 포인트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로 나의 삶은 길을 찾았다. 나는 펀드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고 학교를 다니고 투자 학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쁜 삶을 살았다. 나의 결심은 결코 무른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미래를 설계했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 인생은 분명 교환학생을 전후로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학생 시절은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고요하고 잠잠했던 시절이 그 이후에 펼쳐질 나의 시끄럽고 치열한 삶의 전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환학생 시절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교환학생을 다녀온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