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체험수기
체험수기 2010-2 Stockholm University 장필주
스웨덴. 남학우들에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고향, 여학우들에겐 에그솝 비누 정도로나 각인되어 있을까? 모범답안같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답이 될 수 없는 복지국가 모델로 알고 있다면 조금은 더 이 나라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나라를 다녀왔다. 사실 교환학생 지원서를 작성하며 저울질 했던 것도 아니고 2007년부터 마음에 두고 군복무 시절 내내 소녀시대 사진과 함께 나란히 스톡홀름대의 사진을 두고 있었던 내 자신이었다. 경영학과 학생이긴 하지만 경제개발학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늦기 전에 한번 꼭 체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북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선택에 한 몫 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세계최고의 생활비와 정직한 학점 부여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전자의 문제는 경영대 국제실에서 연계해 준 장학프로그램에 운 좋게 수혜 하게 된 관계로 깔끔히 해결하고 출국할 수가 있었다. 물론 후자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지만 말이다.
도착직후 개강까지.
8월 23일 출국을 했고 개강은 8월 30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배정받게 될 Lappis라는 기숙사는 스톡홀름대 학생들만 사용하는 기숙사가 아니고 스톡홀름 시에 있는 여러 학교, 여러 과정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corridor 형태의 기숙사이다. 1인1실 기준으로 화장실이 딸린 en suite 이 기본이며 각 동마다 구조는 조금씩 다르지만 주방, 거실은 공유하는 형태이다. 한국의 기숙사와는 또 다른 형태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겠지만 학교 측에서도 여러 국적들을 고려하여 배치하기 때문에 살며 겪는 불편보다는 구성의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학교생활 이외의 재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점이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스웨덴이 아닌 ‘교환학생촌’을 경험하게 되는데 교환학생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스웨덴에 관한 흥미를 갖고 있던 나에겐 기숙사를 떨어져 시내에 다른 숙소를 구하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SL ACCESS라는 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30일 또는 90일 정기권 구매를 통해 스톡홀름 내에 있는 지하철, 시내버스, 통근열차, 여객선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데 봄학기 파견이라면 90일권 두 번 구매, 가을학기 파견이라면 90일권(170원 기준 25만원)+30일권(8만5천원) 정도면 학기 내내 별다른 교통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스웨덴의 자랑 IKEA를 방문해 필요한 침구류, 식기류 등을 구매하는 것도 가장 먼저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이다. 정말 자동차 빼고는 다 만들 것 같은 IKEA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정수라고 말하기엔 많이 부족한 품질들이지만 사실상 거쳐가는 유학생들에게는 IKEA 이외의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누가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들이 IKEA의 파란 쇼핑백을 빨래 바구니로 사용한다.
이동통신 같은 경우 2010년 9월 이후 출시된 USIM칩을 사용하는 폰의 경우엔 현지에 와서 바로 현지 이통사의 유심칩을 구매해 사용할 수가 있다. Pre-paid 폰을 사용하는데 같은 통신사끼리의 통화는 기본적으로 통화연결요금만 부과하고, 문자는 무제한 무료이기 때문에 75KR짜리 충전을 해 두 달 가까이 썼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현지에서 구매를 하더라도 전화, 문자만 가능한 폰과 유심칩을 묶어 300KR안쪽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딱히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라면 후자의 방법도 괜찮다.
식료품 같은 경우 유제품이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며 과일, 신선식품류는 비슷하고 나머지는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외식이 거의 불가능한 물가이기 때문에 현지 학생들도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게 되는데 자취가 처음인 경우라면 이 요리에 질려 끼니 걱정을 할 수도 있고, 되려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어 하루 온종일 세끼 챙겨 먹는 재미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적의 다양성은 점심,저녁 식사시간 공동 주방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기숙사를 다니는 유일한 40번 버스로 한국식품점까지 닿을 수 있는 관계로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난다면 재료를 구하러 나가기도 용이하다.
학제, 학교생활
커리큘럼이 다르다. 피리어드제로 운용되는 학사일정은 같은 유럽 학생들도 당황해 하는 부분이었다. 학기를 4개의 피리어드로 나누어 듣고 싶은 과목을 피리어드별로 선별해 수강할 수 있다.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한국보다 매우 intensive한 방법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만약 1피리어드에 걸쳐진 수업이라면 한달 동안 이 한 과목만 수강하게 된다. 강의, 세미나, 리포트, 시험이 한달 안에 끝난다. 만약 1,2피리어드에 걸쳐진 수업이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기존의 3학점 짜리 수업이 아닌 6학점에 해당하는 긴 수업이라든가 3학점 짜리가 좀 늘어져 여유로운 형태로 진행되는 수업일 수 있다. 어쨌든 단순히 수강이 목적이 아니라 여행과 다른 활동들을 고려하는 교환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학기 일정 자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유리한 부분 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1피리어드에 두 과목, 2피리어드에 두 과목을 수강해 학기를 두 세달 안에 끝내고 남은 두 달 정도를 유럽 여행에 집중할 수도 있다. 시간표는 다만 운에 맡겨야 한다. A수업과 B수업시간이 겹칠 수가 있고 세미나도 겹칠 수 있다. 덕분에 수업시간 도중 학생들의 교실 출입이 자유로운 것을 볼 수 있는데 스웨덴 학생들이 인성교육이 부족하다거나 강의가 듣기 싫어 도망가는 것, 혹은 나태해서 늦게 오는 것이 아니고 동시간에 다른 수업을 수강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업환경 자체가 자기주도적 학습을 장려하는 분위기 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익숙지 않은 아시아권 학생들의 경우 정신 줄을 살짝 놓아 버리는 순간 학업과 이별하고 장기간 유럽여행자 신분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Business Ethics(기업윤리), Financial Institute Management(금융기관경영), Human Resource Management(인적자원관리), International Economics(국제무역), 스웨덴어 초급 이렇게 다섯 과목을 수강하였는데 HRM의 경우는 기존에 신청했던 Company Valuation이라는 과목의 난이도 때문에 수강포기를 하고 재 신청했던 과목이다. (교환학생들은 코디네이터에게 문의를 통하여 수월하게 학기 중 수업변경이 가능한 편이다.) 한국 기준으로 출국 전 4학기 이상을 수료하였다면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초기에 신청했던 CVA와 FIM이 대학원 수업이었는데 확실히 학부수업에 비해 난이도도 높고 교환학생의 비율도 적다. 서두에 언급하였지만 학점을 매우 정직하게 주기 때문에 받게 되는 성적에 놀랄 것 같다면 대학원 수업보다 학부 수업을 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일례로 82명이 들었던 수업 중 최고점 B가 두 명, 절반가량이 C와 D, 수강인정 최저성적인 E가 소수, 나머지 40%정도가 F를 받는 수업도 있었다. 특출 나지 않은 이상 A는 힘든 성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강의도 교과서의 내용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초빙강연이나 케이스 스터디 위주의 강연이 많아 교과서는 자신이 알아서 읽고 공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세미나의 경우는 우리에게 친숙한 팀플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이 주된 방법이며 수업에 따라 랩실에서 이뤄지는 PC를 활용한 세미나도 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스웨덴 학생들과 같이 토론을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들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세미나 시간을 가장 즐겼던 것 같다.
경영대학 자체에서 마련한 버디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서 학기 초 많은 행사를 함께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스웨덴의 경우 남녀노소 불문하고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버디를 찾게 될 일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착 초기에 필요한 도움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버디들이 있어서 학교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핀란드 크루즈 여행, 스웨덴 전통 정찬 등 단과대 측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므로 파견자의 적극성에 관계 없이 결국엔 다 친하게 지내게 된다.
Exchange Fair도 매 학기 벌어지는데 Erasmus라는 EU내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런지 스웨덴 학생들은 다른 EU국가 학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아시아의 경우 일본에 관한 관심이 가장 크지만 최근 한국 온라인게임의 영향과 아이돌의 광풍이 이 곳 북구까지 몰아치면서 부쩍 한국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는 게 현지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실제로 캠퍼스 곳곳에 한국인 친구를 찾는다는 쪽지가 붙어 있는 게시판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언어교환에 관심이 많다면 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여행, 기타 여가
봄학기 파견자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가을학기 파견자의 경우 스웨덴 입국직후 9시가 되어서야 지던 해를 보다가 12월이면 오후 3시에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스웨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두운 환경에 구애 받지 않는 성격을 가진 나도 긴 밤에 대처하지 못해 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다른 따뜻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든가 자신만의 여가활동을 꾸준히 즐기는 방법만이 우울증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다.
미주 지역보다 유럽지역을 선호 하게 되는 학생들의 경우, 인근 국가로의 여행의 용이함이 큰 매력중 하나일 것인데 나 또한 그 기회를 잘 이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가장 좋았던 기억은 스웨덴 북부의 키루나를 여행한 기억일 것이다. 현대 모비스의 동계 혹한기 테스트센터가 주위에 위치해있을 만큼 강추위 때문에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유럽에 마지막 남은 자연이라고 알려진 이 북극권 안쪽의 도시에서 봤던 오로라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았던 티벳 남초호수의 절경과 캐나다 록키산맥의 웅장함을 뛰어넘는 광경이었다.
같이 와서 한 학기를 더 연장하게 된 여학우의 경우 인근 대학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정기적으로 연습을 했다. 학교 내에 동아리들이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에 잘 찾아볼 경우 취미를 공유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가 있다면 불교신자가 아닌 이상 충분히 종교활동도 병행할 수 있다. 한인교회가 스톡홀름에도 있고 가톨릭의 경우도 한국인 수녀님이 계신 성당이 있기 때문에 영어미사를 보면서 현지 교민 분들과 만날 기회도 있다.
KOSAS라는 한인 유학생 모임도 있어 두달에 한번정도 정기모임을 갖는데 주로 석, 박사과정의 학생들이지만 모임이 스톡홀름대 기숙사인 lappis에서 열리는 덕분에 학부생인 나도 참석해서 형,누나들의 깨알 같은 멘토링 덕을 많이 봤다.
돌아보며…
스웨덴 입국 직후 그 다음주에 스웨덴 총선이 있었다. 덕분에 학교 수업에서도 스웨덴 학생들과 스웨덴 정치에 관한 그들의 진솔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평소에는 일본학생들 못지않게 내성적이고 차분한 그들이었지만 정치적인 견해에 있어서는 정말 뚜렷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잠깐의 기간이 어찌 보면 내가 얻고 싶었던 스웨덴의 경험 중 가장 소중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떠한 편견도 없는 무채색의 배경 위에서 스웨덴 학생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말 학업 이상으로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이 한편으로는 소모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그리 역동적이지도 않고 내세울 자원도 없는 스웨덴이 아직 세계경제의 대안 모델의 하나로 인정받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스톡홀름대의 경우 국제관계, 정치외교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욱더 유명한 학교라고 한다. 경영대 학생으로 파견을 갔다 왔던 나도 초빙강연, 세미나등을 통해서 다른 유럽국가가 아닌 스웨덴만의 경제계획 시스템과 CSR등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어를 수강하긴 했지만, 예외 없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스웨덴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애써서 어색하기 그지없는 스웨덴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현지어에 관한 고민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스웨덴을 파견지로 고민하는 예비 파견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다. 정말 영어로 입을 떼는 데 있어서는 유럽 안에서 영국을 제외하고는 최적의 국가가 아닌가 싶다. 나가보면 서울만큼 깨끗한 도시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학생들도 많은데 스톡홀름만큼은 서울이상으로 깨끗하고 청결한 도시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봄학기, 가을학기 여부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스웨덴의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어떤 시기가 되었든 스웨덴 사람들의 친절함과 그들의 감각적인 드레스코드만큼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운이 좋게도 ASEM 재단에서 수여하는 듀오스웨덴이라는 장학금을 재정 지원을 받게 되어 여행과 생활에 있어 많은 부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기본적인 생활비 이외에 공산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이 비싼 편이기 때문에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의도하지 않았던 쇼핑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혹자에게는 장점으로 또는 단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호엠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자랑, H&M도 한국에서의 가격보다 비싸다.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도 없다. 앱솔루트 보드카도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기회가 있어서 스웨덴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분명히 갈 것이다. 생활하는 환경이라는 부분이 학생이라는 신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처럼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답답하게 보일 때가 많다. 효율적이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간 그 사람들의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에 담긴 내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빈틈없는 기본기를 가진 훌륭한 운동선수를 보는 것 같다. 사상누각과 같았던 내 모든 지식들을 철저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소중한 한학기였던 것 같다. 떠날 때부터 돌아올 곳이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었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걱정들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그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수정을 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여행도, 영어도 좋다. 충분히 그것들을 파견자들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그 이상의 것, 글로 설명을 할 수 없었던 오로라 같은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면 교환학생의 보람은 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