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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경영학과 2006120021 신종헌
처음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가 8월 중순이었는데, 그저 날씨가 시원해서 좋았다. 한국과 일본의 더위를 무단히 경험한 나에게 8월임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의 시원한 날씨는 네덜란드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림엽서나 TV로만 접했던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그 위에서 뛰어 노는 양들과 젖소들은 네덜란드의 첫 인상을 한껏 고조시켰다. 덕분에 네덜란드에 도착한 첫 날은 혼자서 네덜란드 들판을 2시간 가량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교환학생이 머무는 HES의 기숙사는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건물 자체가 오래되었으며 일반인들도 거주하는 아파트 형태이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메트로(한국의 지하철과 유사함)로 20분 가량 소요되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비가 오면 이마저도 탈 수 없기 때문에 한달 정기권을 끊어 편안하게 메트로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기숙사는 가스 레인지를 켤 때 따로 라이터가 필요할 정도로 오래된 아파트이며, 엘리베이터 문은 손수 열어야 하는 수동식 여닫이 형태라 처음엔 굉장히 당황해 했다. 가끔씩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인해 내가 살던 7층까지 걸어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았던 층에는 총 12명 정도가 살았는데, 그 중 4명 정도가 HES 교환학생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덕분에 할로윈 파티, 생일 파티 등 여러 파티를 기숙사 내에서 교환학생들이 열면, 소음 때문에 일반인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네덜란드 교환학생 생활에서 얻은 것은 이런 어려움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인생의 큰 변화기를 맞는 횟수가 분명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균 5번으로 봤을 때, 이번 HES 교환학생 경험은 그 다섯 번에 충분히 들고도 남을 정도다. 기대 이상의 것들을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들어 냈다.
홍콩 친구가 한국인들은 항상 그렇게 심각하냐고 내게 물었다. 처음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이 외국인들에게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인식된 거 같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뒤, 대만 친구가 내게 한국인들은 공격적인 거 같다고 내게 얘기했다. 매사에 항상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파티 같은 데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게 그 친구의 생각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그 전까지 정답으로 여겨졌던 가치와 행동들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을 크게 느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친구들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여유로움과 조화가 내 삶의 가치에 포함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해지는 것은 내게 즐거움이 아닌 하나의 과업으로 느껴졌고, 당연히 그것이 내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비단 외국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같은 HES의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의 밝은 모습에 매료되어 남몰래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것이 내겐 더 이상 과업이나 짐이 아닌 즐거움으로 인식되었고, 그 친구의 밝은 모습은 삶을 긍정하도록 나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HES의 수업은 본교의 수업내용에 비해 다소 쉬운 것이 사실이며, 프로젝트의 부담도 덜한 편이다. 물론 교수님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들었던 수업들은 대부분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많지 않은 편이었으며 시험을 치는데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대신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시험 내용과 시험을 준비하는 외국인 친구의 태도에 놀란 적이 있다. HES의 시험은 절대 암기만 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수업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대부분의 문제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시험 문제들의 대부분이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과 지식을 실제 상황에 부딪치면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다. 특정 상황을 묘사해 지금 이 상황에 당신이 처해있다면 당신의 결정은 무엇이며, 그 결정이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런 문제에 익숙한 외국인 친구들은 전날 밤에 이론과 지식을 암기하는데 급급해 밤을 새다시피 하는 한국인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교환학생 생활의 매력이다. 교환학생의 경우 중간고사가 없고 정규 학생들이 중가고사를 치르는 일주일 동안 짧은 방학을 가진다. 나의 경우 이 시기 동안 5개국을 돌아다녔는데, 빠듯한 일정이었던 터라 도시의 겉만 보고 이동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0일 동안의 여행 동안 한국인들을 여럿 만났는데, 특히 혼자서 인도에서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해 아프리카를 지나 당시에는 유럽을 여행하던 20대 초반의 한국인 여자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네덜란드 HES를 다녀와서
2003120084 장선혁
풍차와 치즈의 나라 네덜란드, 그 중 환락의 도시로도 유명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HES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흔히 미국, 호주, 영국 등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로의 교환학생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결정임에 틀림없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측면을 넘어서 젊은 대학생 시절에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엄청난 자산이라는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HES로의 교환학생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일단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영국을 제외하고 영어를 가장 잘하는 나라이다. 대학생들은 물론 어느 가게를 들리더라도 누구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나라이다. 패스트푸드점 종업원보다 영어를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초반 좌절감을 느꼈던 적도 있다면 과장일까? 더 행운이었던 것은 Flat mate 가 미국인이었던 점이다. 게다가 그 친구가 사교성이 뛰어나 많은 미국인 학생들이 나와 mate의 flat에 놀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친분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어회화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존재할까? 나는 부정적이다. 미국에 가서 미국인과 같은 기숙사를 사용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유럽에 옴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면서 식자재도 공유하였고 이러면서 더욱 친분이 늘어가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흔히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싱글리쉬를 구사하지 않고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었다. 영어회화 증진을 위해 해외에 나오는 것이 아닌 진짜 문화체험을 위해 해외로 나오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들과 기숙사는 물론 학교에서 한 학기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통에 나의 영어 실력도 급성장했음을 실감했다.
네덜란드, 넓게는 유럽으로의 교환학생을 선택하면서 많은 국가로의 여행이 가능한 것이 선택요인으로 작용하였다. HES에는 학기중에 방학이 있다. 이때를 이용해서 프랑스까지 자전거 여행을 갔다.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서 파리까지 총 6일에 걸쳐 3국을 넘나드는 여행을 한 것이다.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 바로 암스테르담이다. 자전거 보유수가 전체 인구수를 넘어서는 도시로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있다. 시골 구석구석에도 자전거 도로가 형성되어 있는 그야말로 자전거 천국인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전국적인 자전거 도로 형성을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참조해야한다.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전거라는 생각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기로 했다. 외국인 친구들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가는 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유럽의 시골길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이런 여행이야 말로 평생 남는 여행일 것이다. 누구도 함부로 시도하지 못한 일을 해본다는 설렘도 있었다. 시골 도시들을 지나며 다리는 퉁퉁 붓고 엉덩이에는 물집이 잡혔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더니 정말 사서 고생을 했다. 가다가 길이 막혀 고속도로로 달리다가 경찰에 단속된 적도 있었다. 한밤중에 숲속에서 길을 잃어 막막했던 적도 있고 산중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직접 고치기도 했다. 고생 후에 도착한 파리는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비행기나 기차로 도착한 파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여행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이제 학교생활을 이야기 해보자. 언어, 문화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학습 및 주거환경은 HES는 네덜란드에서는 전문대 같은 학교였다. 왜 이런 학교와 교환학생 협정을 맺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네덜란드에는 암스테르담 대학을 비롯해서 에라스무스 대학, 로테르담 대학 등 유럽에서도 유명한 대학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전문대와 협정을 맺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건물도 외부만 멋지지 내부는 우리나라 학원같은 구조였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 고려대학교와는 급이 맞지 않는 대학이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도 없이 우리나라 대한주택공사 같은 DUWO라는 기관이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내부 시설은 지저분하고 낙후되어 있었으며 DUWO의 서비스는 불쾌했다. 엘리베이터는 자주 고장났으며 항상 불안불안했다. 임대료를 납입했음에도 보증금은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으면서 고집을 피우고 있다. 도무지 서비스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이득에 철저한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치인들을 악마라고도 불렀는지 모른다. 그것이 네덜란드를 상업국가로 만들고 튤립버블을 만들었던 동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침체를 만든 것 역시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유럽에서의 한학기를 마치고 나는 그 다음 학기를 베트남으로 인턴을 갔다왔다. 유럽과는 다른 동남아의 문화와 경제 현실 속에서 나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체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점들이 모여 우리 고려대학교 경영대생들은 장기적으로 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그러한 인재들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 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임직원 분들게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