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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경험보고서, The best year in Durham
경영학과 2004120152
외국에 살아본 적 없는 데 대한 두려움과 설렘, 영국과 유럽에 대한 동기 모를 동경과 신비로운 이미지, 이러한 모호한 감정들로 나는 1년이라는 길고 긴 영국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경영대 교환학교 협정 대학 중 영국에 소재한 대학으로는 Durham University가 유일했고, 이상할 만큼 고려대학교와 닮아 있는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이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이끌려 Durham University를 선택하였다.
Durham University는 Oxford, Cambridge와 함께 영국 고유의 College제도를 운영하는 전통 깊은 대학교이다. College제도란 대학교는 각각 전통과 특징, 규율과 모토를 지닌 College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생은 입학을 하는 동시에 전공과 별개로 자신이 지원한 College에 소속되게 된다. 그리고 1학년은 의무적으로 전교생이 College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활동과 책임은 이 College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College들은 규칙적으로 축제, 토론, 경기 등의 행사를 가질 뿐만 아니라 College간의 교류 또한 활발하여 서로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친선을 다진다.
내가 선택한 College는 St. Mary’s College로, 새로 단장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과 그 앞에 넓은 축구장과 테니스장을 자랑하는 전통 깊은 College이다. 당시 내 나이는 22이었지만, Durham University에서는 18 혹은 19살의 갓 청소년기를 벗어난 신입생들과 모든 활동을 같이 하기로 되어있었다.
입학식 날 19살 청소년 영어로 무장한 이 아이들을 처음 만난 그 순간의 당혹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소문의 근원지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는 “한국에서 온 가수”로 소문이 나 있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다가와 이것 저것을 물어보고, 친절히 대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당시 토플영어와는 전혀 다른 이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점, 그래서 유난히 환한 미소로 답해주는 것 밖에는 달리 대답할 게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해프닝과 함께 시작된 나의 영국 대학 생활은 꽤 무난히 흘러가는 듯 했다. 나는 각종 Formal party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으며, Mary’s Women Football Club에도 가입하여 Mid-fielder로 활약하게 되었고, 열린 마음으로 영국의 문화를 배우고, 매너 좋은 영국 아이들을 만나 겁 먹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도 익혀갔다.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난 그 날 역시 주말마다 반복되는 신입생 Formal party중 하나로,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Cocktail dress로 차려 입고 선배들이 마련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빨간 머리에 유난히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아이가 난감한 얼굴로 드라이기를 들고 있었다. “Min, I really don’t know how to do with my hair. Could you help me?”
평소 트레이닝 차림에 침대에서 갓 기어 나온 듯한 자연스러운 헤어 스타일을 추구하던 영국 아이들과 달리, 추운 겨울날에도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그리고 매일 손질한 머리를 고수하던 내가 Emma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었나 보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 때문에 소문으로나마 연예인 대열에 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날 이후 나의 방은 쇼핑을 함께 가자는, 혹은 머리 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여자아이들로 붐비게 되었고, 자연스레 마음이 맞는 아이들과 함께 ‘Group’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젠 가족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남은 나의 best, Emma, 작은 얼굴과 큰 키로 나를 설레게 한 꽃미남 Ben 과 Tim, 나의 mid-fielder 실력을 책임진 개구쟁이 축구소년 David과 각종 축제의 마스터 Leigh, 컴퓨터 게임 왕 Howard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Dominique, 똑똑하고 철저한 Claire와 한국말 배우기를 좋아했던 Matthew.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고, 격려하며, 도우며, 추억을 만들었다.
어느 정도 ‘19세 영국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대학 영어’에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4과목의 경영 과목을 수강했는데, 모두가 2, 3학년의 과목들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 지식과 팀 과제, 혹은 개인 과제가 요구되었다. 나의 문제는 바로 ‘팀 과제’ 그리고 ‘개인 과제’에 있었는데, 당연히 영국 아이들과 똑 같은 수준의 영어로 완벽한 레포트나 과제를 완성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날도 역시 나는 밤을 새서 처음 접해보는 SPSS 프로그램과 끙끙거리며 씨름하고 있었고, 친구들은 일찍이 자기 과제를 끝내고 밖에서 ‘복도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한참 보이지 않자 Emma와 Claire가 방에 들어와 왜 함께 놀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좀처럼 진전이 없는 과제를 보여주며 나의 영어실력의 한계를 설명했다. 그러자 Emma와 Claire는 왜 진작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며 함께 밤을 새 나의 레포트를 완성시켜 주었고, 그 결과 나는 생각지도 못한 A라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Emma 와 Claire는 이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전했고, 그 이후 하루에 한 번씩 아이들은 내 방에 들어와 해야 할 과제가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건 없는지를 물었다. 내가 미안한 마음에 없다고 거짓말로 둘러대면, 용케 알아와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며, 자기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냐며 화를 내곤 했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 앞에서 자주 감동에 울게 되었고, 아이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우리들의 베이비’라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Winder Holiday에는 Emma의 집에, Easter Holiday에는 Ben의 집에 초대되었다. 모두가 집에 돌아가야 하는 Holiday에 혼자 기숙사에 남게 될 나를 배려하여 아이들이 미리 집에 말해 허락을 구한 것이다. Emma는 Oxford의 번화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3층짜리 Detached-house에 살고 있었고, Ben은 Leeds의 교외에 위치한 부유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영국의 대표적인 두 가지 부류의 부유층 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
Emma의 아버지 Steve는 Johnson & Johnson의 계열사를 운영하다가 사업체를 매각하고 또 다른 사업을 구상중인 백만장자 사업가였다. Steve는 Organ cosmetic 사업을 구상 중이었는데, 아시아 시장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한국에서 온 내게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나는 Emma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마다 Steve와 조깅을 하며 사업 구상에 참여하였고, 결국 모자란 그림 실력으로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의 초안을 그리는 데까지 나서게 되었다.
Ben의 아버지 John은 한국에도 그 지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 규모의 건축 회사를 소유한 건축가이다. 건축가다운 그의 미적 감각 덕분에 Ben의 집은 갖가지 미술품들로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Ben과 나는 집 구석구석에 전시된 미술 작품마다 견해를 나누기도 하고, 집 뒤로 나있는 아름다운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오래된 영국 기차를 타고 Leeds의 번화가에 나가 Tea time을 갖기도 하였으며, Ben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뵙고 따뜻한 오후를 보내기도 하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Ben의 할아버지가 내게 손수 만들어주신 Earl Gray는 아직도 가장 향기로운 맛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렇게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들을 채워가는 동안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모두 ‘이별’이란 단어를 예감하고 있었지만, 그게 어떠한 느낌일 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횟수가 늘었고, 서로의 손을 잡고 산책 하는 날들이 늘었다. 우리 모두 이별에 익숙할 리 없었다. 나는 그들의 첫 외국인 친구였고, 그들은 내 영국 삶의 시작이고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날,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더 많이 이야기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Emma가 내 앞으로 예쁘게 포장된 Tiffany 상자를 내밀었다. 이별선물이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선물을 풀려는 찰나에 아이들이 한 명씩 은색 charm을 내밀기 시작했다. Ben은 테디 베어, Claire는 테니스 라켓, David은 축구공, 또 다른 David은 비행기, Dominique은 Tea pot, Emma는 Heart, Tim은 책, Howard는 화분 등등, 암호처럼 통하는 이야기가 담긴 그 자그마한 charm들은 모두 Tiffany의 Charm Bracelet에 달리도록 아이들이 두 달 전 직접 주문하여 준비한 것들이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소중한 선물에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내 팔에는 Charm Bracelet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장식들이 하나의 고리에서 서로 어울려 반짝거리는 것이, 꼭 우리를 닮아 있었다. 우리는 훌쩍거리며 오랫동안 인사를 나누었지만, 누구 하나 ‘Bye’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See you soon’이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 동안의 영국 생활을 떠올려 보았다. 짧지 않은 첫 외국 생활에 힘들고 해결하기 벅찬 순간도 많았고,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한 잊을 수 없는 새로움과 감동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나는 분명 떠날 때와는 다른 조금 더 ‘나다운 내’가 되어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깨닫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에 그리움을 안고, 나를 보듬어 주었던 그 마음을 떠올리며 다른 이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머릿속으로만 그려오던 ‘꿈’ 앞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영국에서의 1년을 ‘쉼표’로 남겨 두고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위해 큰 발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