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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S 소식

“공연장이 먼저 잡혔다” 무모하게 시작한 경영대학 교수밴드의 8년

2026.05.27 Views 172 홍보팀

“공연장이 먼저 잡혔다” 무모하게 시작한 경영대학 교수밴드의 8년


그 시간이 경영대 Art & Culture Room의 새로운 울림으로 이어지기까지

 

(왼쪽부터) 김민정 교수(건반), 김종수 교수(보컬), 김대기 교수(드럼), 유시진 교수(보컬&베이스), 김병조 교수(기타) 

 

무모한 시작이 만든 첫 무대


2018년, 연습보다 공연장 예약이 먼저였다.


“말만 하고 있다가 박종원 교수님이 갑자기 날짜를 잡고 공연장을 예약해버리셨어요.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였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죠.”

 

2018년 첫 공연의 현장


유시진 교수의 회상처럼,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밴드의 첫 공연은 치밀한 계획보다 무모한 추진력에 가까웠다. 첫 공연 날, 객석을 채운 건 가족뿐이었다. 김병조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웃었다. “2018년 첫 공연 때 관객은 직계 가족밖에 없었어요. 정창화 교수님 한 분 빼고는요.” 그래도 두려움이 없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유시진 교수가 덧붙였다. “관객이 가족이라 오히려 다행이었죠. 첫 공연부터 선정된 곡들이 굉장히 난이도가 높았는데, 관객이 가족밖에 없으니 겁이 없었던 거죠.”

 


같은 LSOM 전공에 근무하는 김대기 교수(드럼)와 김병조 교수(기타)의 의기투합으로 시작한 밴드는 마케팅 전공의 유시진 교수(보컬&베이스)와 박종원 교수(세컨기타)의 영입으로 틀을 갖췄다. 그렇게 시작된 밴드가 올해로 8년째다. 공연 횟수만 13번, 레퍼토리는 40여곡. 대동제, 새내기 새로배움터, 단독공연까지 경영대학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이들의 연주가 함께했다. 그리고 올해, 밴드는 무대 위에서 쌓아온 시간을 학생들의 연습실 안으로 옮겨놓았다. 기부를 통해 Art & Culture Room에 악기 및 음향기기를 설치하여 학생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기여한 것이다.

 

 

연구와 연주 사이, 공백기가 이은 것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결성 이듬해인 2019년, 창립 멤버 김병조 교수가 연구년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며 밴드는 약 3년간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그러나 멈춤은 끝이 아니었다. 유시진 교수는 그 시간을 베이스 레슨에 쏟았다. “베이스 기타를 담당할 분을 백방으로 수소문해봤는데, 도저히 못 구해서 제가 직접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꼼짝없이 베이스도 하게 됐죠.” 드럼의 김대기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레슨을 더 받기 시작했고, 멤버들이 각자 파트를 갈고 닦으며 돌아온 뒤 밴드의 사운드는 달라졌다. “지금은 각자 맡은 파트를 완성해서 오니까 사운드 체크 정도만 해도 합이 괜찮아요.”

 

    


김대기 교수는 그 변화를 두고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라고 했다. “대학 다닐 때도 밴드를 했는데, 그때랑은 레벨이 달라요. 자신의 역할은 완성해서 온다, 그게 저한테는 가장 놀라운 점이었어요.” 유시진 교수는 합주가 단순한 연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새롭게 발견했다기보다 확인하는 느낌이에요. 알고 있던 사람의 성격이 합주할 때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연구와 연주 사이의 경계는 어떨까. 김대기 교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드럼은 연주하면서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한 번 잘못 밟으면 바로 게임 끝이라 항상 초긴장 상태거든요. 오히려 역으로 논문이 안 풀릴 때 밴드 생각은 나요.” 유시진 교수도 웃으며 거들었다. “보통 실력의 3분의 2 정도가 실전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연습을 더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실수도 많고,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죠. 차분히 앉아서 논문 쓰는 것 하고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은 연구의 반대편이 아니었다. 막힌 논문 앞에서 문득 무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 학문의 언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것. 경영학과 음악이라는 두 언어를 함께 구사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이 됐다.

 

 

몰래 진행된 오디션, 그리고 가문의 영광


밴드에 새 바람이 분 것은 2025년 대동제였다. 키보드의 김민정 교수, 보컬의 김종수 교수가 무대에 처음 함께 섰다. 두 사람은 그것이 오디션인 줄 몰랐다.


“작년 대동제 때 처음 함께 연주했는데, 사실 그게 저희 나름의 오디션이었어요. 두 분은 모르셨겠지만요.” 김병조 교수는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그 이후부터 적극적인 영입 활동을 했죠.”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두 교수의 반응은 엇비슷했다. 기대보다 두려움이 먼저였다. 김종수 교수는 “학부 때 키보드를 쳤었는데 너무 오래 안 했고, 선배 교수님들이시니까 민폐가 될까 봐 망설여졌다”고 했다. 김민정 교수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제주도에서 열린 교수 세미나에서 처음 공연을 봤을 때의 충격이 먼저였다. “취미로 가볍게 하시는 거겠지 했다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진짜 프로페셔널한 밴드 같아서 너무 놀랐어요.” 그러다 합류 제안이 왔다. “‘가문의 영광’이다 싶었죠. 근데 동시에 민폐 끼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좀 무서웠어요.”


막상 들어오고 나서 두려움은 녹았다. 김종수 교수는 선배 교수들의 악보 암기에 혀를 내둘렀다. “열 개 이상의 곡을 다 머릿속에 넣고 연주하시는 거 보고 진심으로 놀랐어요. 학문적인 암기력이나 이해력이 음악에서도 그대로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김민정 교수는 합주할 때 선배 교수들이 박자가 어디서 틀어졌는지 미세하게 짚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저는 그냥 ‘너무 잘하신다’고 감동받고 있는데, 진짜 프로페셔널한 진지함이 있으시니까 이게 가능한 거구나 싶었어요.”


기존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병조 교수는 두 신임 멤버를 보며 “밴드는 물론 고려대 경영대의 앞날은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대 의상과 가족, 그리고 각자의 인생곡


밴드 생활은 연습실 안에서만 피어나지 않는다. 유시진 교수는 요즘 무대 의상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옷 사러 가면 ‘저거 무대에서 입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와이프가 맨날 말리죠. ‘고마해라’ 하면서요.” 김대기 교수도 가족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조건이 있다. “공연 때마다 와주고 있어요. 집에서 치는 건 시끄럽다고 별로 안 좋아하지만요.”
다섯 교수의 음악 취향은 각자의 이력처럼 제각각이다.


드럼의 김대기 교수는 이글스와 YB를 좋아한다. 드러머로서의 철학도 뚜렷하다. “기교를 부리기보다 다른 멤버들이 편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박자를 잡아주는 역할이 되고 싶어요.” 베이스 겸 보컬의 유시진 교수는 Journey, 윤도현, 전성기 시절의 김경호를 꼽는다. “보컬로는 윤도현처럼 가식 없이 솔직하게 노래하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까지 하는 게 “힘들지만 재밌다”며 웃었다.


기타의 김병조 교수는 중학교 때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듣고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랜디로즈, 슬래쉬, 잭 와일드 풍의 70~90년대 록이 주된 카피 대상이다. 보컬 김종수 교수는 본조비와 부활—박완규, 정동화, 이승철로 이어지는 보컬 계보를 통째로 좋아하는 발라드 록파다. 다음 레퍼토리로 부활의 〈Lonely Night〉도 준비 중이다. 키보드 김민정 교수는 너바나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 힙합까지 이 밴드에서 가장 넓은 장르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교수님들이 여성 싱어가 한 명 더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글스에서 너바나까지. 어쩌면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밴드는 8년째 그 간극을 박자로 메워오고 있다.

 

 

연습실이 없던 시절을 기억하며, 기부로 힘을 보태다


8년간 무대를 뛰면서, 교수들은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제대로 된 연습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경영대 락밴드 동아리 ‘너와나’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김병조 교수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예술적 감성을 키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Art & Culture Room 조성을 학장님께 건의하고 추진했으며, 밴드, 댄스 동아리를 넘어 많은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한 기업의 기부로 마침 공간이 마련된 만큼, 함께 밴드를 해온 교수님들도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뜻을 모았다고 회상했다. 이에 KUBS 120 MARCH 모금 캠페인의 일환으로 교수밴드의 멤버 박종원·김대기·유시진·김병조·김종수·김민정 교수는 이 공간이 학생들의 연습 공간으로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악기 및 음향기기 구입에 기꺼이 나섰다.

 

 

로망은 잠실, 다음 스텝은 신규 멤버 추가 영입


밴드는 계속된다. 김대기 교수는 “잠실 운동장에서 한번 해보는 게 로망”이라고 했고, 2028년엔 앨범도 내고 싶다고 했다. “AI 작곡도 이미 한번 시도해봤는데 꽤 그럴듯하게 나왔어요. 녹음 장소도 이미 알아봐 뒀고요.” 유시진 교수는 각 파트마다 예비 멤버를 두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그림을 그렸다. 김병조 교수는 슬쩍 경고를 날렸다. “지금 추가 리쿠르팅 계획도 있어요. 당사자들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다 보고 있습니다.”

 

2025년 연말 밴드 공연 모습


무대 위에서 함께 박자를 맞춰온 시간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섰다. 논문이 막힐 때 문득 떠오르는 드럼 비트, 강의실에서는 볼 수 없던 서로의 표정, 각자의 전공과 세대를 넘어 하나의 곡을 완성해가는 경험. 교수 밴드의 8년은 그렇게 경영대학 안에 또 다른 리듬을 만들어왔다.


그 리듬은 이제 학생들에게 건네졌다. 지난 5월 트레이딩존과 함께 문을 연 Art & Culture Room은 5월 8일 데모데이를 시작으로 첫발을 뗐다. 연습실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기억에서 출발한 작은 바람은, 학생들이 마음껏 움직이고 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교수들이 8년간 쌓아온 시간은 이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며, 자신만의 무대를 준비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