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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의 제16대 총장에 경영대학의 이필상 교수가 21일 취임했다. 이 신임 총장은 이날 인촌기념과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사에서 "세계속의 대학을 벗어나 세계를 품은 대학"으로 발전해나가겠다고 그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취임사 전문
취임사(Inaugural Address)
고려대학교 총장(President, Korea University)
이 필 상(Phil Sang LEE)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현승종 이사장님을 비롯한 법인 관계자 여러분
박종구 회장님을 비롯한 교우 여러분
항상 학교 발전을 위해 애쓰는 동료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고대생과 학부모님 여러분
오늘 본인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고려대학교의 제 16대 총장직에 취임함에 있어, 먼저 고려대학교의 숭고한 건학정신과 교육이념을 충실히 받들고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와 책임을 혼신의 역량으로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는 바입니다.
고려대학교는 민족과 국가를 구하는 길은 오직 교육의 힘을 기르는데 있다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교육구국의 이념으로 발전한 민족대학입니다. 이러한 이념 아래 고려대학교는 선진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여 조국의 자주 독립과 근대화 그리고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수난과 격랑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고려대학교의 젊은 패기와 올곧은 정신 그리고 심원한 학문은 역사의 동력이 되었고 또 민족의 향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려대학교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고 세계 150대 명문대학의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이 있기까지에는 수많은 선배님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역사의 선두에서 혹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신명을 바쳐 오늘의 영광을 만드신 전임 총장님들과 선배님들께 다시 한 번 큰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지난 4년간 탁월한 비전과 추진력으로 세계 고대의 길을 여신 어윤대 전임 총장님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고려대학교는 100주년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국내의 타 대학은 물론이고 세계의 대학들이 고려대학교의 발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이러한 고대의 변화와 발전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땅에 고대가 있습니다, 이 땅에 미래가 있습니다" 라는 평소 본인의 신념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은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 개발 국가들의 추격으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북핵문제는 밖으로 동북아의 정세를 한층 불안하게 만들고, 안으로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또 경제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의 집중이 요구되지만, 이는 양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고령화, 청년실업, 환경문제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속도는 가속도를 요구하고, 경쟁은 더 큰 경쟁의 회오리를 파생하고, 과거 디딤돌이었던 것이 미래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대학도 이러한 새로운 도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학은 이런 도전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할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새로운 지식과 에너지를 공급하여 서장 잠재력을 끊임없이 보충해야 하며 또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의 대학인 우리 고려대학교는 제 2의 교육구국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21세기의 새로운 도전 앞에서, 제2의 교육구국이라는 역사적 사명 아래서, 본인은 고려대학교의 교훈인 자유, 정의, 진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근본을 잊지 않는 일이며 동시에 고려대학교의 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에게는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너무나 절박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식만의 사슬과 독재의 억압으로부터 민족의 자유를 쟁취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조지훈 선생께서는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 라고 4.18정신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는 밖으로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자유이며, 안으로 재정 압박과 관습적 질서를 벗어난 창조적 지성의 자유입니다. 대학의 지성은 세상의 규제와 관습을 벗어나는 창조적 정신으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정부는 과도한 규제와 재정 압박을 풀어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사회는 대학의 창조적 일탈에 대한 포용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학의 운영 또한 구성원 모두의 개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 창조는 없으며, 창조가 없는 곳에 미래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파행적인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정의는 이념의 기호였으며 투쟁의 깃발이었고 또 부패권력의 대립어였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주, 민족, 민주, 민중의 이념을 내세우며 투쟁하였습니다. 그것은 양심이라는 기름으로 타오르는 아름다운 불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념의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념은 더 이상 정의를 대신하는 보편적 기호가 아닙니다. 자주와 민족은 더 이상 국제화와 배타적일 수 없으며, 민주와 민중이 지녔던 추상적 권위는 이제 구체적 현실의 검증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편협하고 추상적인 이념들의 대립에 힘을 소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황금만능을 정당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의는 편협하고 추상적인 이념도 아니고 왜곡된 신자유주의도 아닙니다. 우리시대의 정의는 냉정한 현실 감각으로 실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신실용주의적 성격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상생과 공존과 조화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돈을 외면하고 진리를 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문정신을 상실한 기술만능주의는 괴물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외면한 공공선의 추구는 실패하였습니다. 이질성과 예외성을 무시한 계량주의, 개방성을 거부한 주체성과 고유성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강자의 힘은 스스로를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입장과 가치와 역할이 높은 수준에서 상호 존중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정의입니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입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진리는 우주의 비밀을 뜻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창조적 지식 생산자로서의 대학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가 시대적 소명을 수행하고 세계 명문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지식생산의 선두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근대 이후 한국 지성사는 서구 지식의 수입사 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수입 지식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수입 지식에 의존한 국가경쟁력은 한계가 있으며, 우리는 현재 그 한계에 거의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는 학문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지식을 수출할 수 있는 학문의 선진성을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인은 세계적 학자들을 널리 초빙할 것이며, 재정을 확보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최선의 연구 체제를 구축할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산업계와의 산학협력을 통한 협동연구 시스템도 강화할 것입니다. 기업과 대학 간의 인재와 기술 및 재정을 나누는 상생관계를 보다 공고히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오늘날 학제 간 협동연구와 국제적 협동연구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 생산은 학문 간의 경계 해체와 국제적인 학문 네트워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는 국제적인 학문 네트워크 속에서 연구와 교육의 태양이 지지 않는 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창조적 지식 생산으로 조국과 인류사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대학의 진정한 국제화는 학문의 세계화를 통해서 실현될 것입니다.
21세기에도 고려대학교는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입니다. 그러나 그 전당은 21세기형 자유, 정의,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본인은 21세기형 자유, 정의, 진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대학발전에 몸과 마음을 바쳐 고려대학교가 세계 명문대학으로 발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내외의 고대 가족 여러분들 그리고 고려대학교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성원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2월 21일
고려대학교 총장 이 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