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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S 소식
2004년 4월 카투사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막 제대한 예비역 병장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당시 2년 만에 민간인으로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때 해내겠다고 마음먹은 첫 번째 과제는 교환학생으로 해외대학에 파견되는 것 이었습니다. 2년간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면서 나름대로 영어를 써왔다고 하지만, 그 곳에서 배운 영어는 군대라는 좁은 세상에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그 곳을 벗어난 다른 공간,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좀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영어를 배우고 전공공부 또한 영어로 하면서 전공분야에서만큼은 대화에 부족함이 없는 영어실력을 기르겠다는 생각으로 교환학생에 지원하게 됩니다. 여러 교환교 중에서 저는 호주Griffith 대학교에 지원했는데, 이는 그 대학에서International Business를 공부 할 수 있고, 또한 2학기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Griffith 대학교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2005년 2월부터 11월까지 약 10개월간 파견학생으로서 생활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의 호주 생활을 돌이켜 보면 크게 세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참고문헌을 꼼꼼히 달아야 했기에 무척이나 작성이 까다로웠던 에세이, 자칫 시간의 블랙홀에 빠져들기 쉬운 기숙사 생활, 그리고 고생도 했지만 새로운 것들은 경험하는 즐거움에 지칠 줄 몰랐던 여행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호주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부딪힌 어려움은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영어책을 읽고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도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지만,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토플을 공부하면서 에세이 작성을 조금 연습하기는 했지만, 토플의 에세이 작성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 에세이를 써 내야 했고, 익숙하지 않은 Reference 도 꼼꼼히 달 것을 요구했기에 그 어느 과제보다도 부담감이 컸습니다. 특히, 표절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하겠다고 교수님들이 수업시간에 여러 차례 강조를 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하나의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꼼꼼한 자료조사를 하고 찾은 자료의 출처를 기록해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아진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데 이 또한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자료를 이해한 뒤에 그것을 자기의 말로 다시 풀어 써야(Paraphrasing) 했기에 결코 쉽지 안았습니다.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된 글을 읽고 그 내용을 다른 말로 다풀어내는 과정은 마치 그간 해온 영어공부를 모두 쏟아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꿀 뿐만 아니라, 동사도 바꾸고, 원문과 다른 문장의 구조도 생각해 봅니다. 이런 식으로 고민 끝에 마침내 한 단락이 완성됩니다. 물론 올바른 Paraphrasing 을 위해서는원문을 읽고 내용을 이해 한 다음,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쓰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원문과 똑같이 쓰게 되는 것을 피하면서 자신의 언어로 풀어쓰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원문을 읽고 이해하고 다시 쓴다고 썼는데 원문과 상당히 비슷하게 쓰여진 글을 보면 난감하기 그지 없습니다. 또는 원문과 쓰여진 방식은 확실히 다른데 조잡하기 그지 없는 글이 되어 내용이 잘 전달될 수는 있을지 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호주 학교생활의 반은 글을 쓰는 것을 고민하면서 지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이에 많은 자료를 읽게 되고, 다양한 표현을 써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에 더욱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호주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것은 기숙사 생활입니다. 물론 홈스테이나 쉐어의 행태로 기숙사 이외의 곳에서도 생활이 가능하지만, 저는 기숙사에 있으면 학교에서 가깝고 체육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계속 기숙사에서 지냈습니다. 물론 귀찮게 학교 밖의 숙박시설을 찾으러 다니는 것보다 기숙사에 있는 것이 많이 편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점이 경계해야 할 점입니다. 처음에는 기숙사 자체도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적응하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고, 같이 생활하는 외국인 친구들과도 이야기 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기숙사 행사에도 자주 참가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 지면,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방에서 조용히 수업준비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트북과 인터넷, 편안한 침대가 바로 옆에 갖추어진 방에서라면 대체로 행해지는 두문불출형 폐인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숙사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엔 다양한 야외활동을 계획해야 했습니다. 특히, 호주처럼 날씨가 좋은 나라에서는 밖에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가까운 브리즈번 씨티로 외출을 하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 다니며 식도락에 빠져보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문화생활도 즐기는 등 기숙사 밖의 생활들이 호주에서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주에서의 추억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방학을 이용해 갔다 온 여행들입니다. 호주에서의 여행들은 평생을 두고 제 삶을 풍요롭게 할 만큼 값진 것들 입니다. 호주의 학교에서는 매 학기 중간에 약 일주일 가량의 방학이 있어서 이 기간을 이용해 짧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1학기 중간방학 때는 케언즈를 다녀왔습니다. 호주에서의 첫 여행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고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산호초로 둘러싸인 모래섬으로의 요트여행은 지금도 떠올리면 그 푸른 바다와 눈부신 햇살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열대의 자연환경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겨울방학(6월 말~ 7월 중순)을 이용해서는 같은 프로그램으로 호주에 온 친구들과 자동차를 렌트해서 보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여행을 했습니다. 브리즈번에서 시드니, 멜버른을 거쳐 그레이트오션로드로 그리고 포도주의 산지 아들레이드에 이르는 호주 동남부를 아우르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긴 여행 기간 만큼이나 아름다운 경험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았습니다. 자동차로 여행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지도책을 사서 꼼꼼히 지도를 살펴가며 우리가 원하던 곳에 도착할 때에는 일종의 성취감과 함께 그곳의 아름다운 경관들이 저희에게 상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차를 빌리느라 만만치 않게 드는 렌트비용과 기름값을 만회하기 위해 여행의 반 정도는 차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책임들이 뒤따랐습니다. 특히, 시드니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주차문제로 불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여행들을 할 때마다 호주의 환경에 대해 부러워했습니다. 땅이 넓은 만큼 남북으로 다양한 기후대가 분포하고, 광활한 평지가 있는가 하면 험악한 산악지형도 있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이런 자연환경의 이점을 백배 활용해서 각종 관광상품으로 개발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짧은 역사 속에서도 몇몇 대도시에는 옛 유럽풍의 건물과 조형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해 놓아서 문화적으로도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호주에서의 10개월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지내온 호주라는 곳의 모습은 잘 짜여진 듯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여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호주 학생들의 모습에서, 여행을 하면서 만난 호주인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기 전에 브리즈번 시티에서 거리 공연을 구경할 때 공연자가 구경꾼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거리공연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와서 즐기실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이 없으면 1달러를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돈이 많아서 10달러를 주셔도 좋습니다. 더 많아서 50달러를 주시면 뽀뽀를 해 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 중에는 큰 박수로 호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귀국 후에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와 부족한 학업에 정진하느라 하루하루가 더 빠듯해졌습니다.
그러나 요즘도 가끔은 호주에서 느꼈던 여유와 열정의 삶을 다시 떠 올려봅니다. 어찌 보면, 호주에서 보고 배운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학과전공이 아닌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누리는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나와 우리 사회가 힘겹게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해서 생활의 기반을 닦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먼저 앞으로 나가기 위한 삶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여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봤으면 하고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