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KUBS 소식

안철수 의장 특강 요약 전재

2006.04.25 Views 1676 정혜림

 이윤은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이 4월 24일과 25일 경영대학과 경영대학원  강단에 섰다 . 안 의장은 ‘안철수 연구소의 사례로 본 한국 벤처 기업의 성장과정’을 주제로 강연했다.    (요약 경영신문 오보라기자)
 
 
  컴퓨터 바이러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88년 이었다. 당시 의대 조교인 나는 컴퓨터 뇌(C 브레인) 바이러스와 백신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이를 한 과학 잡지에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바이러스 연구 및 백신 무료 배포를 계속했다. 95년까지 본업인 의학연구를 하면서 새벽시간을 쪼개어 바이러스 연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 발생과 백신개발이 혼자서 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섰다. 이에 의학연구와 바이러스 연구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6개월의 고민 끝에 의대 강사직을 사임하고 ‘안철수연구소’를 시작했다.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작은 역할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당시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는 국내에 나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어 연구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이자 엔지니어인 내가 기업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 막막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 연구소 경영과 함께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MBA 공부를 병행했다. 
  한국에 돌아온 7년은 IMF로 한국경제가 어두운 때였다. 하지만 IMF는 안 연구소에게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한국경기가 악화되자 외국기업 지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한 것이다. 이로써 안 연구소는 외국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고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나는 한국경기 회복이 최소 3-4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체계를 갖추어갔다. R&D에 집중하고, CFO와 HR파트를 정비하는 한편, 세일즈 채널을 구축했다. 
  이러한 준비를 발휘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왔다. 1999년 CIH 바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하여 30만대 컴퓨터의 하드가 동시에 망가진 것이다. 이에 대해 준비한 기업은 국내에서 안 연구소가 유일했다. 이 일로 백신시장이 4배, 안 연구소의 매출액은 5배 성장했다. 
  99년은 안 연구소에게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99년 말 벤처 붐으로 거품경제가 생겨났다. 나는 거품이 지속되면 손해보는 투자자가 늘고, 벤처기업 코스닥 지수가 하향 반전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 95%가 망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로 인해 투자가 줄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벤처기업 95%가 망한다’는 상식이 되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타사의 Y2K 특별세일이었다. 경쟁사에서 Y2K 바이러스가 전국 컴퓨터를 망가트린다고 선전하며 Y2K백신을 특별세일해서 팔았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지기는 무리였다. 우리 회사는 Y2K 바이러스 위험이 잘못된 우려라 판단하고 ‘Y2K 피해는 없을 것’이란 보도를 냈다. 단기적 손해를 보기는 했으나 장기적으로 회사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 두 사건을 통해 한 회사가 대세를 바꿀 수는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꿋꿋하게 옳은 발언을 한 것이 사회와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직원들에게도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값진 경험이 된 것 같다. 
  현재 안 연구소는 자만하지 않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01년에는 ‘백신회사에서 통합 보안 기업으로, 국내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으로, 비상장회사에서 상장회사로’ 4대 변화를 시작했다. 2005년에는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했다. 나 스스로 ‘내가 이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경영에서 물러나 경영과 이사회를 분리하기로 했다.     
  기업이란 한사람이 할 수 없는 의미있는 일을 여러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의 가치는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는 데 있다. 이윤과 기업의 영속은 비즈니스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안 연구소를 하면서 의사의 길을 포기했으나, 사회에 보탬이 되며 인생을 풍요롭게 살았다고 생각한다.